횡설수설 영화리뷰2013. 5. 16. 10:05

(참고로 모든 오프닝은 당시에 쓴 겁니다. 유의 부탁 드립니다.)

 

정말 오랜만에 애니메이션이 연속으로 리뷰로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이번주가 사실 좀 지독하죠. 생각해 보면 11월이 전반적으로 좀 많이 지독합니다. 가족영화제에, 부천에, 이번에는 메가박스도 겹쳐 있으니 큰일 난 게죠;;; 게다가 지금 상황으로 봐서는 조만간 상암에도 한 번 다녀 와야 할 것 같습니다;;; 겹치는 몇 편의 영화를 그 쪽으로 빼 버렸거든요. 아무튼간에, 한동안은 정말 리뷰 퍼레이드가 될 것 같습니다.

그럼 리뷰 시작하죠.



 





항상 이야기 하는 바 이지만, 제가 애니메이션을 좋아하게 된 것은 그렇게 오래된 것이 아닙니다. 게다가 애니메이션을 좋아하게 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곧 미국 드라마쪽에 빠지는 바람에 흔히 말하는 오덕의 길로 가는 스타일은 아니었습니다. 물론 그 와중에도 몇몇 감독이라던가, 그리고 몇몇 유명한 애니메이션에 관해 들어보게 된 바는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미야자키 하야오고, 나머지 하나는 역시나 오시이 마모루였습니다.

오시이 마모루가 갑작스럽게 다가온 것은 사실 굉장히 간단한 이유였습니다. 일본 문호가 개방이 되고, 그 이후에 갑자기 극장용 애니메이션이 마구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 계기였죠. 당시 공식적으로 일본 문화가 개방됨으로 해서 개봉하지 못 하고, 그동안 B자로만 돌던 애니가 갑작스러베 공개가 되었습니다. 그 와중에 끼어 있던 것이 그 유명한 공각기동대였습니다. 전 당시에 이 작품이 왜 그렇게 유명한지 몰랐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제가 이 작품을 본격적으로 보게 된 것은 오히려 속편인 이노센스 덕분이었죠. 그 이후에 겨우 공각기동대라는 작품을 알게 되었고 말입니다. 그렇게 되어서 오시이 마모루라는 이름을 알게 되었기도 하고 말입니다.

하지만, 이에 관해서 고백을 할 것이 하나 있는데, 제가 그 이전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관계로, 오직 공각기동대 이후의 작품 세계만을 알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런 이유로 인해서 오히려 공각 이전의 작품이던가, 공각기동대와 관계가 없는 작품은 전혀 보지 않게 되었던 것도 있습니다. 오히려 이후에 스튜디오 I.G라는 이름을 달고 나온 작품은 열심히 보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공각기동대 외에도 그가 작품을 분명히 란 적이 있을 거라는 겁니다. 고백하자면, 그 사실을 간과하고 접근을 한 것이죠. 그렇게 함으로 해서 이 작품에 관해서 약간은 다른 관접으로 처음에는 접근하게 되었던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한 번 천천히 생각을 해 보도록 하죠. 그러니까, 그게 공각기동대 이후의 오시이 마모루의 작품 세계입니다. 대부분은 엄청난 분량의 철학이 들어가고, 영화가 매우 현학적으로 접근을 하기 시작하는 시기입니다. (물론 그가 만든 실사영화쪽은 이야기를 하지 않도록 하겠숩니다. 애니메이션과는 조금 다른 방식의 접근을 하니 말입니다.) 이런 관점은 기본적으로 그가 어떤 작품을 만들고, 그리고 그가 만드는 작품에 관해서 생각하는 일종의 편견으로 작용할 수도 있는 점입니다.

바로 그렇게 접근을 하면서, 전 이 작품에 관해서 처음에는 완전히 다르게 생각을 했었던 것을 미리 고백을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본 것이라고는 공각기동대가 전부요, 이후에 본 작품은 공각기동대의 본격적인 속편인 이노센스였고, TV 시리즈인 공각기동대 S.A.C를 봤고, 거기에 얼마 전에는 스카이 크롤러를 봤으니 말입니다. 이 작품들에 관한 공통점이 하나 있는데, 바로 그가 엄청난 분량의 철학을 작품 속에 내포를 했다는 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흔히 영화에서 작가주의라는 말이 있습니다. 영화 자체를 스스로 작품성과 예술성을 위해서 영화에서 상업적인 면을 기꺼이 포기하게 되는 면이 작가주의인 면이 많습니다. (물론 가끔 아닌 경우도 발생을 합니다만, 그냥 보편적인 접근이라고 이해를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보통 초짜감독들이 상업성과 작가주의의 균형을 못 맞추고 영화가 무지하게 지루하게 되는 면들이 있습니다.

보통 이 지루한 면이 발생하는 것은, 분명히 감독이 원하는 것을 영화에서 뵤편을 하고 있는데, 영화의 관객들에게는 그런 면이 제대로 전달이 안 된다는 점입니다. 이 전달의 안 된다는 것은 결국에는 작품을 보는 관객들이 이해를 못 하고, 결국에는 여화에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면서, 영화가 계속해서 질하게 느끼게 될 거라는 점이죠. 이 점 덕분에 영화가 지루하게 되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하지만, 이제 경지가 어느 정도 들면, 감독은 영화에서 작가주의를 발휘하면서, 그것을 어떻게 영화를 보는 관객에게 전달을 할 것인가에 관해서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정말 대단한 감독이라는 말이 나오게 되는 것이죠. (물론 그 경계를 실험하는 감독들도 몇 있습니다. 작품성과 흥행성의 저울질에서 성공을 하는 경우인데, 이 경우는 정말 드뭅니다. 이 경우에 성공한 사람이 제 기억에는 최근에는 크리스토퍼 놀란 정도죠.)

아무튼간에, 이 영화를 만든 오시이 마모루는 바로 그 면에 관해서 이제는 통달을 한 사람입니다. 사실, 그의 작품을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이 작품이 굉장히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 면도 분명히 존재 합니다. 사실 그만큼 어렵기도 하고 말입니다. 하지만, 그의 영하 속 철학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그의 특제 브랜드라고 할 수 있는 수준이기도 합니다. 작품을 조금만 아는 사람이면, 그가 영화에서 어떤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지, 그리고 그 것에 관해 얼마나 생각을 많이 해야 하는지 에 관해서 알 수 있는 상황이 되는 겁니다. (그 와중에 해석에 관한 차이를 어떻게 줘야 하는가에 관한 논쟁도 정말 볼만하죠.)

하지만, 그도 그 이전의 시절이 있었습니다. 말 그대로 작품성에 관해 미친 듯이 파헤치기 전, 그러니까 좀 심하게 말 하자면, 그도 밥을 먹고 살기 위해서 작품성과 흥행성의 경계에서 어느 정도 연구를 해야 할 상황이 분명히 있었다는 점입니다. 제가 판단하기로는 지금 리뷰 하고 있는 영화인 기동경찰 패트레이버가 바로 이 경게에 서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부터 그 이유를 자세히 설명을 하기로 하죠.

기본적으로 오시이 마모루의 작품에서 애니메이션의 느낌은 대단히 정적이고, 인물들의 표현이 대단히 현실적입니다. 제가 말하는 현실적이라는 것은 애니메이션에서 말하는 현실감이 아닌, 말 그대로 영화 속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그런 현실감을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현실감 덕분에, 캐릭터에서 우리가 더더욱 묘한 매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더 재미있는 것은, 그러한 캐릭터들의 기본 설정에서는 오히려 애니메이션적인 면이 가미가 된다는 점입니다. 이 현실과 애니메이션의 경게에서 작품의 형상은 더더욱 묘해집니다. 그리고 이러한 묘한 캐릭터 형성 속에서 작품이 형태도 이런 두 부분의 충돌을 볼 수 있죠.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작품을 보여주고 있는 카메라의 역할입니다. 기본적으로 애니메이션에서 쓰는 그런 뭔가 비현실적인 구도가 아닌, 영화에서 자주 쓰는, 그것도 드라마쪽에 강한 영화에서 자주 쓰는 그런 구도로 작품들이 만들어 져 잇습니다. 분명히 애니메이션이지만, 작품에서는 애니메이션의 스타일에서 탈피를 하고 있는 것이죠.

사실, 기동경찰 패트레이버 극장판에서 이런 구도가 상당히 많이 사용이 됩니다. 기본적으로 이 작품에서의 영상 구도는 우리가 생각하는 스릴러 영화의 구도와 거의 비슷합니다. 분명 작품 속에서 다루고 있는 상상력의 산물은 대부분 애니메이션의 그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것을 보여주고 있는 영상은 여전히 영화의 그것과 매우 비슷한 것이죠. 이 영화에서는 이미 그 기미가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오직 그런 면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애니메이션에서는 흔히 쓰는 과장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최근의 디지털 애니가 보여줄 수 있는 인물 표정의 경지에 다다르기 전, 인물들의 감정을 오직 성우들의 능력과 인물들의 행동에서 보여줘야만 하는 시절이 있었습니다. 이 영화는 바로 그 부분을 여전히 사용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상당히 묘한 일이죠.

게다가 이 작품에서는 의외로 오시이 마모루 특유의 깊은 철학적 사유가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것도 아닙니다. (제 주변에서 좀 상하게 말씀하시는 분들은, 이것이 개똥철학에 중2병 환자 중증에서만 볼 수 있는 수준이라고 하지만, 글쎄요, 그 친구들이 죽음에 관한 깊은 탐구를 보여줄 수 없는 수준이라 말이죠;;;) 제가 기억하는 오시이 마모루의 작품의 대다수는 바로 이 깊은 철학적인 해석을 보여주고 있죠. 게다가 이 부분의 지독한 점은, 작품에 관해서 관객들이 또 다시 한 번 해석을 할 수 있는 여지를 또 남기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오히려 그런 부분이 상당히 줄어들어 있습니다. 이는 상당히 기묘한 것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분명 오시이 마모루의 어떤 테마를 예상하고 갔더니만, 의외로 흔히 말하는 재미를 추구하는 그런 물건들을 보고 왔으니 말입니다. 그것이 나쁘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의외라는 것이죠. 제가 아는 세계에서 한 발 더 나아간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그런데, 이 작품은 또 나름대로 특징이 있습니다. 흔히 말하는 상업 애니메이션과는 또 다른 특징 말입니다.

기본적으로 이 작품은 로봇물의 성격이 상당히 강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들이 타고다니는 것을 로봇이고, 로봇에 의해 벌어질 수 있는 심각한 사태에 대비해서 로봇으로 대항을 한다는 구조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는 대부분의 로봇물에서 이용이 되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건담을 로봇으로 벌어지는 전쟁이고, 그렌라간의 경우는 로봇으로 이뤄지는 생존싸움이라고 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이런 것들은 기본적으로 재미를 위해서, 그리고 흔히 말하는 2차적인 시장(고상하게 말 해서 그렇지, 말 그대로 완구 시장입니다.)을 노리고 작품을 만드는 것이 상당수입니다. 이런 면은 사실 그렇게 나쁜 것은 아닙니다. 결국에는 이런 것은 어느 정도 돈이 벌려야 하는 것이고, 그래야 다른 것에 도전할 수 있는 기반이 되기도 하니 말입니다. 이런 면에서 보자면 이런 것은 사실 나쁜 것이 아닌 겁니다.

이야기가 살짝 빗나갔는데, 아무튼 이 작품은 그런 로봇물의 기반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의 또 다른 특별한 점은, 이런 기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이런 기반을 가진 여타 로봇물들과는 다르게 오직 액션에만 치중하거나, 아니면 좀 더 거국적인 면모에 치중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작품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흔히 말하는 인간의 범죄라는 면모에 관해서 의외로 충실하게 밀고 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제가 이미 앞서 이야기를 한 바 있습니다만, 이 작품은 기본적으로 스릴러물의 화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건에 관해 추적을 하고, 사건에 관해 어떤 해결점을 가지고 있으며, 동시에 이런 면에 관해서 해결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죠. 아이작 아시모프가 로봇이라는 작품의 머리말에서 이야기를 하듯, 작품은 분명 SF이지만, 추리소설적인 면모를 끌어들여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조금 다르게 해석을 하면 바로 이런 면이 나올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 말입니다.

이 작품은 그만큼 인간에 관해서 열심히 설명을 합니다. 게다가 로봇의 활동에 관해서 이 작품은 그다지 많이 보여주려고 하는 편도 아닙니다. 심지어는 로봇이 등장하는 장면에서 그 안에 타고 있는 인간이 직접 나오는 경우도 많죠. (악취미적이게도, 이 작품의 구형 로봇은 아예 인간이 겉으로 노출되어 있는 구조로 나와서, 로봇을 클로즈업하면, 인간이 보이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이 작품의 매력은 바로 그것에 있습니다. 흔히 말하느 로봇이 등장하고, 로봇에 관한 액션이 나오며, 그리고 그 액션을 펼치는 것도 로봇이 많이 나오지만, 이 작품의 사건과 그리고 그 해결이라는 부분에서 인간이라는 부분이 등장을 하고, 그리고 그 근원에 한 인간의 무시무시한 계획이 잠들어 있다는 점도 그런 면을 상징을 합니다. 이 작품은 그 면을 매우 유려하게 표현을 해 냅니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 그 면을 이용할때에, 극장판 애니메이션일는 것을 굉장히 잘 이용을 합니다.

기본적으로 TV 애니메이션이라는 부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떻게 기승전결을 이루어야 할 것인가입니다. 결국에는 이야기를 하는 데에 있어서 시간제한에 시달리게 되고, 이 시간제한을 해결하기 위해서 스토리는 24분이라는 시간 이내에 잘 짜여 들어가야 하고, 그리고 그 안에서 어느 정도 소기의 결말을 가져가야 하는 구조입니다. 실제로 일본 애니는 이 면에 관해서 거의 신의 경지라고 할 수 있죠.

하지만, 극장판 애니메이션의 흐름은 다릅니다. 극장판 애니에서는 결국에는 영화의 흐름 답게, 어느 정도 시간적인 면에서 상당히 세밀하게 사건을 그리는 것이 가능하며, 동시에 이야기를 좀 더 유려하게 끌고 가는 것이 가능해 집니다. 이런 것들이 결국에는 작품을 일반 TV애니와 극장판 애니를 다르게 하는 점이죠. 하지만, 이 면에 관해서 TV판의 연장으로 나오는 대부분의 애니가 잘 이용을 하지 못합니다. 한 사건을 길게 늘림으로 해서, 이야기의 세부사항만을 채워 넣는 방식으로 가는데, 극장판 애니에서 오직 이것만이 다는 아니라는 겁니다.

하지만, 기동경찰 패트레이버는 바로 이 면을 굉장히 잘 이해를 했고, 동시에 영화적인 흐름이 어떤 것인지에 관해서 영화가 굉장히 잘 보여주는 케이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면에서 극장판이라는 것이 어떻게 구성이 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스토리가 길어지면서 그 속에 들어가 있는 세부 사항의 연결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에 관해서도 굉장히 잘 표현이 되어 있는 그런 케이스라고 할 수 있는 것이죠.

게다가 이 작품에서는 의외로 철학적인 이야기를 스토리와 굉장히 유기적으로 연결시키는 시험도 해 내고 있습니다. 사실, 최근작이 과도한 철학으로 인해서 오히려 작품을 사색을 하게 만든다면, 이 작품은 그런 면과는 다르게 철학의 강도는 좀 줄어들지만, 오히려 관객들이 작품을 즐기면서, 자연스럽게 그 철학을 생각하게 하는, 그리고 생각하기 싫은 사람들도 적어도 그 인과관계를 따지게 할 수 있는 그런 형태를 지니고 있습니다.

사실 이런 면들에 관해서 정말 요즘에 잘 나온 말이 있는데, 작품성과 흥행성의 균형을 굉장히 잘 맞춘 그런 케이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제가 1989년에 나온 작품이 당시에 어떻게 사람들에게 비쳐져서, 그리고 이 작품이 얼마나 관객들에게 어필을 하고, 결론적으로 얼마나 많은 돈을 벌어들였는지는 솔직히 알아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분명한건 적어도 현대인들에게는 충분히 그렇게 비친다는 것이죠.

작품성에 관한 결론을 내리자면, 사실 이미 많은 분들이 이미 내린 결론이지만, 상당히 잘 만든 작품입니다. 애니메이션이지만, 애니메이션이면서도 극장에 맞는 스토리 방식과 스케일, 그리고 흔히 말하는 실사 영화의 특성을 적극적으로 수용을 하면서 동시에 애니메이션의 느낌이라는 것을 적당히 사용을 한 것에 관해서 이미 멋진 작품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애니메이션이라고 하지만, 아이들이 즐기기에는 좀 부담이 큰 작품이라고 하는 면에서 이미 좀 문제라고 하시는 분들이 분명이 있을거라고 생각을 합니다만, 브래드 버드라는 감독이 말 한 바 있듯, 애니메이션은 장르가 아닙니다. 동시에, 오직 아동을 위한 장르는 더더욱 아닙니다. 애니메이션은 영상을 어떤 방식으로 표현을 했는가에 관한 특성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이 작품은 애니메이션이라는 특성 내에서 SF스릴러 라는 장르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그런 경지에 올라와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 뭐, 그렇습니다. 이 작품 역시 본연의 목적인 큰 스크린으로의 상영은 앞으로 몇 번 더 남았는지 도저히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이미 한 번 공개가 된지 벌써 20년이 다 되어가는 작품이죠. 하지만 빠른 시일 내로는 상당히 힘든 작품임에는 분명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쯤에서는 영화의 가치가 어쩌고 하기 보다는, 그냥 빨리 달려가셔서, 표를 끊어서 이 작품을 본래 목적의 큰 스크린으로 한 번 보는 것이 더 정답일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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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피니
횡설수설 영화리뷰2013. 5. 16. 10:04

(참고로 모든 오프닝은 당시에 쓴 겁니다. 유의 부탁 드립니다.)

 

뭐, 그렇습니다. 이 영화 역시 제가 영화제에서 본 영화죠. 사실 이 영화와 이미 올라간 리뷰인 엠마 블랭크의 마지막 나날을 같은 날 봤다죠. 게다가 아직 올라가지는 않았지만, 현재 정리중인 3D워크샵 관련 글도 당일날 같이 처리한 겁니다. (이 글은 정리해야 할 부분이 너무 많아서 한 며칠 더 걸릴 것 같습니다;;;) 아무튼간에, 일요일부터 시작해서 계속해서 영화제가 되다니, 정말 놀라운 일이죠.

그럼 리뷰 시작합니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 역시 그다지 기대를 많이 하고 본 영화는 아닙니다. 솔직히 제가 보고 싶은 영화는 같은 시간에 같이 상영하는 E.T였는데, 아무래도 제가 예매가 아닌 현장 구매로 표를 산지라, 일찍 예매를 안 한 것이 패인이어서 결국에는 이 영화를 보고 말았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계획 없이 영화를 본 케이스이기에 제가 사전 정보도 없이 영화를 본 상황이 되고 말았죠.

아무튼간에, 이 영화를 처음 접한 상황에서, 제가 접근을 하는 넋은 영화의 어떤 의미 보다는 이 영화에서 느낀 느낌으로 먼저 접근을 하는 것이 좀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이 영화는 그런 접근법을 쓸 만한 부분이 굉장히 많거든요.

클로버 필드를 보신 분들이라면, 영화를 보면서 롤러코스터를 탄 느낌이라고 하는 것이 어떤 이야기인지 아실 겁니다. 영화 자체는 화면이 미친 듯이 흔들리고, 영화에서 화면은 우리가 극장에서 흔히 보는 것이 아닌, 말 그대로 지진이 난 듯이 마구 흔들리고, 화면이 의도되지 않은 부분도 과감하게 보여줍니다 제 주변의 몇몇 분들은 이런 것들이 무지하게 멀미가 난다고 하시더군요. 이 영화가 대략 이런 느낌이라고 이야기 하고 싶지만, 그보다 더 가는 면도 있습니다.

영황 이야기를 할 때 영상적으로 괴상한 영화를 대라고 한다면 빠지지 않는 오래된 영화가 안달루시아의 개입니다. 당시에 살바도르 달리가 이 영화에 참여를 했었죠. 이유는 다르지만 이런 시각적인 비쥬얼의 향연은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도 발전이 되어서 등장을 한 적이 잇습니다. 이 영화는 시각적으로 이러한 색과 형태에 관한 괴한 면 역시 동시에 가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흔히 말하는 MTV식 빠른 편집까지 화면에 올라가고 나니, 말 그대로 영화 자체가 화면이 혼돈의 카오스 그 자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실 제가 좀 과장해서 이야기 한 부분이 있기는 합니다만, 영화를 보고 있는 데에 있어서, 영화의 화면이 그렇게 느껴 진다는 이야기입니다. 특히하기 그지없는 화면 구성에다가, 마치 싸구려 같은. 하지만 다분히 의도적인 편집이 보이는 그런 영화라고 할 수 잇죠.

하지만, 이 영화가 오직 이런 부분만 가지고 이야기를 하기에는 너무 모자랍니다. 만약 이 영화가 오직 화면의 이런 부분들만 가지고 만든 것이라고 한다면, 이건 영화가 아니라 그냥 비디오 아트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겁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적어도 비디오아트라는 측면과는 전혀 다른 그런 특징을 보여주기 때문에 이 영화가 영화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죠.

이 영화의 제목이 마이 수어사이드인데, 이 영화의 제목에서 말 하듯, 이 영화는 한 청년의 자살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물론 이 청년에 관해서는 스포일러가 되기 때문에 이야기를 하지 않기로 하겠습니다만, 이 영화에서 하는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청소년의 자살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청소년 자살이라는 것은 전세계 어디에서나 문제가 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죠.

기본적으로 이 영화는 한 영화마니아이자, 영화를 직접 찍고 영화를 직접 편집하는 한 청소년의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에서 그는 스스로가 자살하는 모습을 영화에 담겠다는 게획을 말 하고, 이 이후에 벌어지는 일들을 담고 잇습니다. 스토리적으로는 사실상 굉장히 간단한데다, 이 이상에 별로 나아가는 이야기 없습니다. 하지만, 이 기본 스토리 라인 밖으로 나가는 부분들을 절대로 간단하게 흘러가지 않습니다.

사실 제가 이 영화를 상상한 것은, 이 영화가 정소년 자살에 관한 영화라고 하기 보다는, 일종의 자살에 관한 테마를 잡고 진행이 되는 영화의 가장 미묘한 구석을, 말 그대로 예술 영화 형식으로 풀어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 속에 어떤 주제가 담겨 가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이 청년이 반쯤 미쳐서, 스스로가 찍어 가는 영화에 일종에 자신을 내던져 가면서 미쳐가는 스토리를 기대를 했던 것이죠. (예, 제가 이걸 볼 당시에 굉장히 피곤해서 정신이 좀 삐뚤어져 있엇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렇게 고차원적인 예술 필름은 아닙니다.. 물론 이 영화가 상당히 예술적으로 이렇게 접근하는 부분이 있기는 합니다. 앞서 말 했듯 화면의 편집은 날아다니고 있고, 영화 의 화면 전환은 30초를 못 넘어가며, 말 그대로 혼돈으로 가득찬 청소년의 머릿속을 영화로 풀어 헤친듯한 모습을 가지고 잇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이 속에, 청소년의 진지한 고민을 담아가는 부분을 보여주기 시작하죠.

이 영화에서 자살이라는 부분은 상당히 민감하게 작용을 합니다. 자살에 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는 청소년이 있는가 하면, 이 영화의 주인공이 이야기 하는 자살을 필름에 담아 보겠다는 나름 원대한 계획을 정말 대단하게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은 우선 옳다 그르다를 따지기 전에, 왜 청소년이 이런 반응을 보이고 있는가에 관해 한 번 정도 생각을 해 볼 여지를 남기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어른들의 입장에서 미성년자, 특히 청소년의 입장은 대단히 어렵게 다가오기 마련입니다. 분명 이들의 생각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동시에 이해 할 수 없는 부분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사실, 청소년기의 시절만 지나면, 그 시절에 고민했던 것들이 정말 쓸모없게 느껴지는 경우도 정말 많죠. 하지만, 그들의 고민은 그들을 죽음으로 이끌 만큼 상당히 강하게 다가옵니다.

물론 제가 기대한 것은 이런 것이 아니었다는 것은 앞에서 이미 이야기를 한 바 있습니다. 그 이유는 정말 간단하게도, 이 영화가 적어도 영화제에 걸리는 만큼, 정말 막 가는 영화가 될 거라는 기대를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가 그 상황에서 간과한게 있는데, 이 영화가 상영되는 영화제가 가족 영화제라는 것이었죠. 가족 영화제에서 정말 막 가는 영화가 상영이 될 리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문득 들더군요.

아무튼간에, 이 영화는 바로 그 청소년의 머릿속을 정말 제대로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에서 매우 터무니 없이 자살을 영화로 찍겠다고 하는 것은 상당히 기묘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이런 것들에 관해서 누구라도 어떤 잣대라도 들이 댈 수 있는 것이죠. 하지만, 그 뒤에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점이 이 영화에서는 화두로 올라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가장 강하게 다가오는 주제는, 왜 도데체 주인공이 자신의 자살을 필름으로 남기고 싶어 하는가 하는 점이죠.

이 와중에 이 영화에서는 끊임없이 등장하는 사람이 하나 있습니다. 그의 언행은 생각보다 상당히 과격한데, 일종의 곡해로 상황이 돌아가고 있죠. 이 사람의 말을 그냥 그대로 들어 보면, 죽음에 관해 옹호하는 분위기라고 착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죽음에 관한 옹호는, 좀 더 세밀히 들여다 보면 약간은 다른 이야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 영화는 그 부분에 관해서도 상당히 심도 깊게 다루고 있습니다.

이 사람의 이야기는 영화 전반에 등장을 하면서, 주인공이 왜 자살하려고 하는지에 관해 이유로 계속해서 다가오게 됩니다. 사실, 제가 봤을 때에도 정말 멋있는 글귀로 치장이 되어 있죠. 죽음에 관해서, 그것도 스스로 죽는 것에 관해서 말입니다. 이 영화에서는 그 치장으로 인해서 곡해 되고 있기에, 주인공은 죽음을 생각을 하게 됩니다. 게다가 이런 경우에 있어서 벌어지는 일들도 보여주고 있죠.

그리고 주인공의 주변 사람들 이야기도 같이 존재를 합니다. 이 영화에서 상당히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부분인데, 자살이라는 것에 대해 주변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는 점이죠. 이는 굉장히 복잡한 부분인데, 앞서 말 했던, 주인공의 주변 젊은 친구들의 경우는 상당히 다양한 의견을 내 놓고 있지만, 주인공 주변의 나이 든 사람들은 오히려 삶을 주려고 노력을 합니다. 물론 그 방법에 관해서는 다들 다르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이 방법의 다름은 기본적으로 주인공에게 크게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사실, 주인공이 스스로 왜 자살을 해야 하는지에 관해서 일종의 확고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도 안 들어가게 이야기가 짜여져 있죠. 그리고 그런 부분에 관해서 강압적인 접근을 하려고 하면, 오히려 이가 안 들어갈 정도로 역으로 튕겨 나가게 되는 겁니다. 이런 묘한 관계는 결국에는 이 상황에 관해서 근본적인 해결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 근본적인 해결이 없이 오직 안 돼만 외칠 수는 없다는 것이죠.

이 문제에 관해서는 전세계 어디나 똑같은 부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른들을 이해를 못 하죠. 왜 청소년이 자살을 하는지에 관해서 말입니다. 하지만, 청소년들은 나름대로의 문제를 안고 살고, 그 문제가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고 할 지라도, 청소년의 생각 내에서는 그 것이 매우 큰 문제로 다가올 수도 있음을 미리미리 자각을 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기본적으로 이 영화에서 그 문제라고 나오는 것은 사실, 이 주인공이 외톨이라는 겁니다. 자신의 생각에 빠져 살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며 살지만, 그 속에서 공허함을 느끼고, 차라리 친구들과 같이 지내면서 누군가 자신을 봐주기를 원하는 분위기로 갑니다. 이 부분에 관해서 청소년들의 경우 상당히 이중적인 태도를 취하는데, 스스로는 아무도 필요 없다고 외치면서도, 실상으로는 누군가가 옆에 있어주기를 바라는 것이죠. 이 미묘한 관계는 결국에는 어른들이 대체 뭐가 문제냐 라고 외치는 경우가 되기도 하는 겁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나오는 청소년 자살 문제는 이것만으로 귀결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청소년은 기본적으로 어른들이 하는 것을 해 보고 싶어하고, 술을 마시고 싶어하며, 동시에 어느 정도 약물도 해 보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가식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면도 분명히 존재하죠. 이 미묘한 문제는 사실 어른들은 좋든 싫든 매번 뒤집어 쓰고 살아야 하는 문제이지만, 청소년은 그 것들이 뭔지 호기심을 느끼는데, 아무도 설명은 안 해 준다는 겁니다. 이 영화는 바로 그 문제로 자살을 결심하게 되는 경우도 나옵니다.

이 영화의 좋은 점이라면, 나름대로 이런 저런 해결책을 어느 정도 보여준다는 겁니다. 사실 약간 뭔가 공익광고적인 영화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주제들만 놓고 보면 말입니다. 게다가 이 영화에서 나오는 해결책은 생각 외로 정형적입니다. 누군가 설명을 해 주고, 그들에게 가르침을 줄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것이죠. 이 영화에서는 그런 역할을 하는 몇 사람들을 내세우기도 합니다.

좀 웃기는 일이기는 한데, 이것이 사실 정답입니다. 누군가 윽박지르고, 그들을 강압하기 보다는, 오히려 설명을 하고, 그들을 이해하면서도, 동시에 그들의 관점과는 다른 면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죠. 이 영화는 그런 부분을 매우 자연스럽게 연결을 하며 들어가고 있습니다. 물론 그 면에 있어서 영화가 속도가 여전히 떨어지지 않고 밀어 붙이고 있다는 점 역시 대단한 일이라고 할 수 있죠.

문제는, 이 영화가 이렇게 나감으로해서 전반부와 후반부가 갈리는 느낌이라는 겁니다. 제가 이 글을 시작할 때에 매우 롤러코스터적인 느낌이 심하게 난다고 했는데, 이 영화의 초반부가 그런 부분이 매우 심하게 느껴지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뒤로 갈수록 템포는 떨어지고, 화면은 점점 고정적이 되죠. 솔직히 좀 많이 아쉬운 일입니다. 영화 전체에서 계속해서 같은 템포를 유지하는 것은 힘든 일이기는 하지만, 이 영화의 경우는 초반이 거의 광속이기 때문에 후반도 비슷한 파괴력을 유지를 할 필요가 어느 정도는 있었다고 봅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후반은 좀 많이 늘어지는 편이죠.

사실 이 기점이 되는 것이 주인공이 좋아하는 여자를 만났을 때부터입니다. 사실 이 면은 그렇게 나쁜 것은 아닙니다. 누구라도 좋아하는 여자를 만나게 되고, 그리고 그가 내세우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인해서 둘이 만나게 되는 일은 분명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니 말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이 둘의 만남 이후로 카메라는 점점 더 정형화가 되어가고, 후반으로 갈수록 웬지 유튜브 그 이상의 느낌을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것들도 나름대로의 효과를 하지고는 있습니다. 전반이 흔히 말하는 주인공의 개똥철학을 계속해서 늘어놓는데, 이 부분이 이렇게 늘어지면 안 되니 말이죠. 이런 개똥철학은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잘 보여주기 위해서는 결국에는 어느 정도 과감하게 밀어 붙여야 할 필요가 분명히 있습니다. 그리고 후반으로 넘어가서 심각해지면, 영화가 이런 부분에서 템포를 좀 떨어트러야 할 필요가 분명히 있기도 하고 말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너무 급브레이크를 밟고, 결국 후반으로 가면 명절날 고속도로 마냥 너무 천천히 흘러가 버리는 것이 아쉽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영화의 가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 영화가 젊은 친구들에게 어필 할 수 있는 구석은 이미 넘치거니와, 영화를 보면서 말 그대로 신난다는 감정을 느낄 수도 있는 법이니 말입니다. 이 영화는 바로 그 부분을 잡아 내기에 충분한 에너지를 영화 내내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의 가장 특이한 점은 바로 그런 것이죠.

약간 재미있는 게, 이 영화의 편집입니다. 보통 이런 편집을 내는 경우는 영화 기획 단계에서 밀어 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감독은 오히려 편집을 이 영화에서 주인공을 맡은 배우에게 맡겨버렸습니다. 사실, 이 문제에 관해서 이 영화를 본 바로는 결국에는 이렇게 하는 것이 득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상영 당일에 감독과의 대화가 있어서 감독을 봤는데, 나이가 생각보다 많더라고요;;;) 아무래도 젊은데다, 영화 속에서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어서 연기를 펼친 상황일 텐데, 이것을 가지고 스스로 짜 맞춰 보는 것이 가능했을 터이니 말입니다.

이 영화는 편집 외에도 효과면 에서도 젊은 사람들을 기용한 케이스입니다. 사실, 이 영화의 톡톡 튀면서도 정말 빠른 느낌에, 동시에 매우 기묘한 화면을 가진 이유는 역시자 넒은 사람들의 힘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영화에서 이것을 발휘를 하는 것은 결국에는 영화를 얼마나 기본적으로 이해를 하는가가 아니라, 젊은 사람들은 영화에 뭘 담고 싶어 하는가를 제대로 펼치는 것이 이 영화의 목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죠.

이런 면에서 보자면 이 영화는 분명히 성공입니다. 영화의 매력도 상당한데다, 영화를 보는 내내, 이 영화가 나름대로 예술성이 엄청나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지루하다는 느낌으 별로 못 받으니 말입니다. 영화제 기간이 아니면 볼 수 없는 영화중에 한 편으로서, 이런 영화가 정말 대단한 영화라고 생각을 합니다. 어딘가 탄탄하지 않은 부분이 분명히 있기는 하지만, 영화를 끌고 가는데에 참신한 시도를 할 수 있으니 말이죠.

하지만, 아쉬운 부분도 있습니다. 이 영화의 등급은 국내에서는 18세 미만 관람 불가입니다. 사실, 이 영화가 성인 대상이 아니라 청소년 대상의 이야기를 하는데, 생각해 보면 좀 아쉬운 일이죠. 이 영화에 좀 불순하고, 외설적이며, 욕설도 간간히 들리기는 하지만, 분명히 어느 정도 청소년에게 보여줘야 할 부분이 있다는 겁니다. 그렇다고 가위질을 하는 것은 솔직히 바라지 않는 일이죠. 그래서 더더욱 아쉬운 영화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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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피니
횡설수설 영화리뷰2013. 5. 16. 10:03

 (참고로 모든 오프닝은 당시에 쓴 겁니다. 유의 부탁 드립니다.)

 

이번에 오랜만에 한주 내내 새로운 글들은 모두 영화제가 될 것 같습니다. 지금 현재 상황으로 봐서는 새로 개봉하는 영화는 딱 두개고, 하나는 시사회, 그리고 나머지는 모두 영화제가 될 것 같네요. 하지만, 현재 약간의 문제로 인해서 패트레이버가 화요일로 옮겨야 하나 지금 고민중입니다. 아무래도 일요일에는 소셜 네트워크 시사회가 버티고 있어서 말이죠. (이미 예매를 해 버렸다죠;;;) 정말 한주에 볼 영화 많더군요;;;

그럼 리뷰 시작합니다.



 





영화제에서 공개되는 영화들을 볼 때 마다 느껴지는 것이 하나 있는데, 생각 외로 항상 이해하기 힘든 작품들이 굉장히 많다는 겁니다. 영화를 지켜 보는 데에 잇어서 영화가 이해가 되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영화가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가를 알아보기 위해 이 영화를 계속해서 보는 경우도 있죠. (성격상, 영화가 끝나지 않으면 영화관에서 잘 일어나지 못하는 성격도 사실 이 면에 한 몫 하고 잇습니다.)

지금 이야기 하는 이 영화, 엠마 블랭크의 마지막 날들이라는 영화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영화 역시 대단히 이해하기 힘든 영화였는데, 솔직히, 제가 이런 작품에 익숙하지 않은 데다, 예술성이 짙다거나 하는 영화는 좀 많이 힘들어 하는 편이거든요. (차라리 철학의 깊은 곳을 탐구를 한다면, 이 철학을 이해하기 위해 다른 참고서적이라도 뒤져 보겠지만, 이런 작품은 그렇게 할 수 없다는게 정말 큰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간에, 이 영화, 제가 본 중에 가장 특이한 영화 3위에 꼽히는 영화입니다. 우선 이 영화의 오프닝부터 상당히 특히한데, 영화에서 일단 우리가 알 수 없는 인물들간의 관계에 관해서 영화가 보여주고 있습니다. 영화에서 일단 여자가 나오는데, 마치 우리들이 흔히 생각하는 부자집 마나님의 느낌을 한 여자가 나오죠. 이 여자를 주변으로 하인들이 있고 말입니다. 여기까지는 여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부자집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 한 사람의 역할이 등장하면서 미궁속으로 영화가 빠져 들고 있죠.

그 사람의 역할은 말 그대로 기르는 개입니다. 상당히 놀라운 일인데, 이 영화에서 그가 무슨 대사를 하는 것은 후반부에 몰려 있고, 중반부까지는 말 그대로 개의 역할을 매우 충실하게 수행을 하고 잇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등장하는 것이 이상할 정도로 그는 개라는 역할에 충실하고 있죠. 이 영화는 이 사람으로 대변되는 질문으로 시작을 합니다. 어째서 이 사람들은 이 사람의 시중을 들고, 왜 누군가는 개의 역할을 하고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이 기묘한 시작은 이 영화의 관게를 점점 더 이상하게 끌고 가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 들의 더 미묘한 상호아은, 이들이 말 그대로 가족이라는 데에서 더더욱 아이러니로 빠지고 있죠. 영화엣 이 아이러니는 이들이 왜 이 여자 곁에 붙어있는가에 관한 해답이라고 하기는 좀 애매합니다. 사실, 이들은 그 여자를 사랑하지도 않는 상황이며, 그들이 붙어 있는 이유는 단지 그녀가 가지고 있는 무엇 때문이죠.

이 영화는 사랑이 아닌 그 무엇으로 인해서 가족이 뭉쳐져 있는 매우 기묘한 상태를 보여줍니다. 사실 이 기묘한 관계에서 이 영화는 뭔가 공포를 끌고 나오는 동시에, 영화에서 웃기는 이미지를 부여하죠. 이들의 모습은 굉장히 정형적이지만, 그들이 이러고 있는 이유 마져도 굉장히 전형적이지만, 그 두가지가 뭉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은 결코 평범한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더 묘한 것은, 이러고도 그들이 서로 뭉치고 있다는 점이죠. 흔히 말들 하는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말입니다. 정확히는 공공의 적을 가지고 단결하고 있는 분위기라고 하는 것이 정확한 것이겠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이 공공의 적이 있는 한, 이들이 뭉쳐져 있는 것은 의외로 당연하게 느껴집니다. 게다가 이 공공의 상황에서는 오히려 이들이 나름대로 가족같이 느껴지기까지 하죠.

게다가 이 미묘한 관계에서 이 가족이라는 면은 더더욱 괴하게 상황을 돌아가게 합니다. 이 영화에서 여자아이는 도망가고 싶어 하지만, 역시나 목적으로 인해 참고 집에 붙어 있고, 친척이라고 불리우는 여자는 여전히 밥을 하고 있으며, 남편인지 뭔지 모를 남자는 여자의 명령을 참아내면서 동시에 여자의 모든 부탁을 다 들어 주는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게다가 이 영화에서 젊은 남자는 나름 심부름꾼의 역할을 하고, 그 와중에 대사가 없는 늙은 남자는 계속해서 충실히 개의 행세를 하고 있습니다.

이 모습의 가장 묘한 것은, 이들의 평소 행실을 거의 그대로 반복할 뿐이라는 겁니다. 상당히 묘한 일인데, 이들은 그녀 밑에서 이 일을 하는 것을 싫어 합니다. 굉장히 싫어 할 뿐만 아니라, 벗어나려고 노력을 많이 하죠. 이 와중에 여자 아이는 일탈을 꿈꾸면서 다른 남자를 만나기까지 합니다. 이 기묘한 관계는 결국에는 영화에서 웬지 모를 공포심을 느끼면서도, 웃기게 보이는 코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이 여자가 어떤 이유로 인해 이들을 휘두르는 것을 하지 못하게 되자, 상황은 급변합니다. 이 영화에서 개의 역할을 하던 사람은 여자아이가 사랑하는 사람을 해치게 되며, 아무도 이 여자를 도와주지 않습니다. 물론 주인 행세를 하던 여자가 휘두르던 것이 사라졌으니 당연한 것이라고 할 수는 있지만, 이들은 이 문제에서 처음에는 해방감을 느끼는 겁니다.

이것도 잠시, 이들은 말 그대로 산산히 부서져 갑니다. 나름대로 모여있는 이유가 사라진 이상, 이들은 말 그대로 스스로의 주장을 펼치면서, 그동안 참아왔던 것들을 모두 표출해 내기 시작을 합니다. 이 상황에서 정말 묘한 방향적인 면모가 느껴지기 시작하는 것이죠.

이 영화에서 두 상황의 관계는 정말 손바닥 뒤집듯한 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자가 스스로 진실을 밝히는 순간, 모든 것들이 부서져 나간 것이죠. 그 이유가 정말 대단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없어지자 말 그대로 순식간에 와해가 되어 버리는 겁니다. 이런 지독한 관계는 결국에는 영화에서 일종이 가장 묘한 모순을 자아내게 됩니다. 그 모순이란, 과연 가족이란 무엇인가 하는 점이죠.

이 영화의 가족상은 솔직히 바람직한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금방 부서져 가는 가족상은 정말 위험한 것이죠. 하지만, 이들은 어쨌든간 그 이유로 인해서 뭉쳐 있다는 겁니다. 그 것이 무엇이 되었든 간에, 결국에 이들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참고 견디면서 스스로를 달래고, 남들을 달래고 있는 것이죠. 물론 이 문제는 자신들은 미워하지만, 어쩔 수 없이 떠받들어야 하는 공공의 적이 있기 때문에 뭉쳐 있는 가족이라는 애매한 점 때문입니다. 사실, 이런 면에서 보자면 그렇게 바람직한 가족상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죠. 결국에는 나름대로의 욕심으로 인해서 모여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목적이 사라지자, 가족은 순식간에 파괴가 됩니다. 그간 참고 조용히 지내던 사람들이, 전부 자기 주장을 하면서 자신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겠다고 싸웁니다. 이 묘한 관계는 결국에는 모두를 분리시키는 상황으로 가게 되죠. 이 분리가 되어 가는 상황은 정말 금방 벌어지는데다, 그 이유는 생각보다 정말 간단합니다. 그간 참았던 것들이 모두 표출이 되기 시작한 것이죠.

하지만, 이 와중에 이들은 매우 기묘한 모습을 보입니다. 이들은 여자가 살아 있을 때 직함으로 달고 있던 역할들이 말 그대로 이들의 모습을 대변하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죠. 특히나 이 영화 속에서 개의 역할을 하던 사람은, 말 그대로 잔혹하고 짐승같은 면모를 그대로 드러내게 됩니다. 이 문제에 관해서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흘러가게 되는 것이고, 결국에는 이들의 관계는 모두 어그러지고 맙니다.

사실 앞서 말하는 가족상의 모습은 어찌 보면 바람직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서 뭉쳐 잇는 것이니 말이죠. 하지만, 이 상황에서 이 사리사욕이 발휘되는 것이 사라지는 순간, 이들은 이들 스스로의 주장을 하면서, 그 여자가 없는 자리를 마구 채우고 듭니다. 물론 이들은 그 여자가 휘둘렀던 그런 강력한 것이 없는 상황이죠. 이런 상황에서 이들이 걸어가는 길은 결국에는 파멸밖에는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 파멸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차례로 다가 옵니다. 이들은 여자가 거추장스럽다는 이유 하에 여자를 괴롭히고는 있지만, 여자가 사라지자, 그 자리를 차지하고, 심지어는 그들을 위협한다고 생각을 하는 사람을 제거하려고까지 하고 있죠. 이 지독한 관계의 결말은 결국에는 모두가 갈라서게 되는 상황으로 몰리게 되는 겁니다. 물론 아주 모두는 아니지만, 적어도 이들은 감정적으로는 전과 같은 상황은 절대로 될 수 없게 된 것이죠.

이 기묘하기 짝이 없는 관계는 영화에서 매우 관찰적으로 진행이 됩니다. 이들에게 무언가 전혀 감정을 이입할 수 없는 상황으로 영화가 몰고 가고 있는 것인데, 영화를 보면서 누군가 잘 하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뿔불이 갈라져 가고 있는 것을 그대로 그냥 표현을 해 버리고 있는 것이죠. 이 속에는 어떠한 꾸밈도, 어떠한 이입도 없습니다. 말 그대로 행동만이 있을 뿐인 겁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강력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은, 이들이 이렇게 함에도 불구하고, 전혀 그들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다는 겁니다. 이 와중에 어린 여자애는 모종의 이유로 인해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방황하며, 서로 사랑한다고 믿었던 관계는 그들의 아들과 딸의 관계가 갈라짐으로 인해서 덩달아 갈라지게 됩니다. 이 와중에 짐승으로 나오는 양반은 점점 더 지독한 사람으로 변모하죠.

이 관계는 결국에는 그종안 가족이라고 부를 수도 없었으나, 나름대로 뭉쳐있는 관계가 따로 떨어져나가게 되는 이유입니다. 그렇다고 이들이 행복한 것인가에 관해 묻는다면 그것도 아니라고 할 수 있죠. 말 그대로 가족관계는 없고, 그저 타인과 타인의 불편한 관계만 영화에 남게 되는 겁니다. 전에는 나름대로 서로 위로하는 가족의 형태만이라도 남아 잇었으나, 이 상화엥서는 그런 것도 전혀 안 남아 있게 되는 것이죠.

물론 이 말도 안 되는 관계도는 이 영화에서 너무나도 삭막하게 표현이 되어 있습니다. 곳곳에 웃기는 면모가 있기는 하지만, 이들은 너무나도 이중적인 상황에서, 말 그대로 이중적인 태도를 여전히 취하고 있는 겁니다. 이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이들은 말 그대로 스스로의 목적마져도 잃고 폭주하는 형태를 띄기도 하고 말입니다. 결국에는 모든 것이 내려 앉는 상황이 된 것이죠.

이런 것들에 있어서 감독이 의도한 바를 알 수 없다고 하는 것은 이 영화가 결국에는 이런 기묘하기 짝이 없는 스타일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화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가족이라고 할 수 없는 형태입니다. 하지만 이들이 내막은 가족이죠. 여자를 빼면, 또 나름 가족답게 살고 있기도 하고 말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이렇게 묘하게 돌아가는 관계를 진정한 가족이라고 하기는 힘듭니다. 그렇다고 후반에 산산히 부서져 가는 것이 가족이라고 생각을 할 수도 없고 말입니다. 이 기묘한 관계가 지켜보는 관객으로서는 사실 굉장히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라고 밖에 할 수 없죠.

이 지독한 관계의 결말은 결국에는 이런 결말로 갈 수 밖에 없기는 합니다. 결국에는 이런 것이 다 무너져 내리게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죠. 하지만, 영화를 보는 것에 있어서 이게 관객에게 어떤 매력으로 다가오는가 라고 질문을 한다면, 사실 전 할 말이 없습니다. 이걸 매력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솔직히 영화를 보면서 극도로 불편하기 짝이 없기는 하니 말입니다.

흔히 영화에서 삭막하고 드라이하기 짝이 없는 영화에서도, 영화를 보는 묘미가 있게 마련입니다. 영화를 보면서 뭔가 이 지독한 영화를 보면서, 나는 이 영화가 대단히 삭막하지만, 중독적인 면이 분명히 존재한다 라고 말 할 수 있는 부분이 분명히 있어야 하는 것이죠. 보통 이 면이, 영화아 정말 대단한 작품인지, 아니면 영화가 극도로 짜증날 뿐인지 갈리는 지표이기도 합니다.

이 영화는 바로 그 사이에 서 있습니다. 영화가 매력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매우 묘한 매력이 있죠. 가족이라고 부를 수 없는 관계에서의 가족과 이 구심점이라는 탐구에서는 굉장히 특히안 감정을 불러 일으키니 말입니다. 게다가 이 영화는 오직 지독하게만 가는 것이 아니라, 영화를 보는 사람들에게 어떤 영화적인 재미를 일정 이상 보여주기도 하니 말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를 이렇게 말하자면 사실 부족한 부분이 많습니다.

우선, 등장인물들은 상당히 많은데, 솔직히 맘 붙일 곳이 없습니다. 이들의 감정은 매우 혼란스럽기 그지없고, 중심이 없습니다. 이 중심에 관해서 관객들이 알게 되는 순간이 캐릭터에 어느 정도 마음을 붙이는 순간이 되는데, 이 영화에서 이 중심은 온데간데 없고, 말 그대로 이들의 혼란만이 이 영화 속에서는 존재합니다. 결국에는 영화 밖에서 계속해서 관찰자로 머무를 수 밖에 없는 것이죠.

드라이한 영화에서는 사실 이 관찰자적인 시점이 상당히 잘 먹히는 경우도 있기는 있습니다. 물론 이 영화도 그렇게 받아 들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제 생각이지만, 영화가 너무 마음을 둘 곳이 없는 것도 상당히 힘든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영화가 힘들어 지니 말이죠. 결국에는 영화가 지겹게 느껴지는 겁니다. 이런 상황은 사실 그렇게 좋은 것은 아니죠.

게다가 이 영화에서는 영화에서 흔히 말하는 기승전결의 구조와는 조금 다릅니다. 한마디로, 이야기의 설명이 두가지로 나뉘며, 그것디 전후반을 구성을 하고 있는 방식이죠. 솔직히, 이 부분을 못 만들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잘 만든 부분에 속하는 부분이죠. 하지만 아무래도 제가 익숙하지 않다는 점이 조금 거부감을 들게 만드는 원인이라고 생각이 들고 잇습니다.

물론 이렇게 죽 단점을 늘어 놓는다고 해도, 이 작품은 상당히 괜찮은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지어는 피곤해 죽겠음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끝가지 다 보게 하는 이상한 마력이 있으니 말입니다. 이런 것들은 상업 영화에서 느끼기 힘든 감정이기도 합니다. 이런 것들을 느끼려면 작은 영화들을, 그것도 영화제에서만 공개할 것 같은 영화들을 고르는 방식이 필요 합니다. (물론 저의 경우는 비는 시간에, 비는 영화를 본 것 뿐이기는 합니다;;;)

아무튼간에, 이 영화, 의외로 상당히 충격적인 영화입니다. 영화를 보면서, 진짜 가족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을 하게 하기도 하고, 영화를 보면서 이들이 왜 이렇게 행동을 하며, 왜 이들이 이렇게 쉽게 무너져 가는지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도 영화를 보면서 상당히 즐겁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사실 이쯤 되면 이 영화를 한 번 꼭 보라고 하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문제가, 이 영화가 절대로 와이드 릴리즈 될 가능성이 없다는 겁니다. 이 영화르 제가 아는 바로 이 영화를 이번에 마지막으로 상영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아무래도 놓친 분들게 심심한 위로를 보내는 것이 나을 듯 싶습니다. 이런 영화는 영화제가 아니면 볼 수 없는 영화라 말이죠.

약간의 첨언을 하자면, 영화를 만야 어떤 경로에서든 보실 기회가 된다 싶으시면, 각오를 단단히 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영화가 자체가 그렇게 심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상당히 기묘하기 그지 없으니 말입니다. 이런 영화를 처음 접하시는 분들이라면 정말 신세계를 경험하시는 것이라고 할 수 있죠.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상당한 충격 요법이 될 것이라 기대를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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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