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 영화리뷰2013. 5. 30. 09:45

(참고로 모든 오프닝은 당시에 쓴 겁니다. 유의 부탁 드립니다.)

 

슬슬 올해의 기다림도 막판이 되어 갑니다. 물론 아직 007이 공개가 안 된 상황이기 때문에 그 기다림이 끝났다는 말은 도저히 할 수 없겠습니다마는, 그래도 일단은 올 여름 블록버스터 시즌에 기대했던 물건들은 거의 다 공개가 된 상황입니다. 그리고 이 영화가 아무래도 마지막 포문을 열어 줄 거라는 생각이 들고 있고 말입니다. 덕분에 오랜만에 예매 전쟁이라는 것을 굉장히 심하게 겪는 상황이 되기도 했고 말입니다.

그럼 리뷰 시작합니다.



 





1. 작품 들어가기 전 항상 하는 이야기

작품 들어가 항상 이야기 하는 바 이지만, 다크나이트는 엄청난 작품이었습니다. 상업적인 힘과 작품성 사이의 균영을 잘 잡는다는 것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죠. 그 균형은 항상 논란의 여지가 있어왔고, 둘중 하나만 잡아도 그래도 성공이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많은 이야기가 오갈 수 박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다크나이트는 그런 시스템에서 굉장히 다른 부분을 직접적으로 들고 나왔다고 할 수 있죠. 물론 그렇다고 해서 시작부터 굉장히 창대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배트맨 비긴즈는 솔직히 기대보다는 우려가 앞서는 작품이었습니다. 다른 문제 보다도 팀 버튼이 창조한 이상한 세계와 절대 용서받을 수 없는 짓을 벌인 조엘 슈마허의 배트맨의 환영을 완전히 헤치고 나와서 배트맨을 보여줘야 하는 상황이 되었을 때 과연 무엇이 진짜 매력이 될 것인가 하는 점이 굉장히 중요한 부분들이 되었던 것이죠. 아무래도 배트맨의 영화판의 분위기는 흔히 말 하는 만화적인 세계관을 그대로 받아들였던 것이 화근이었던 겁니다.

하지만, 드디어 놀란의 배트맨 비긴즈는 이 면을 부수기 시작했습니다. 배트맨의 탄생 이야기를 이야기를 하면서, 동시에 그 속에서 현대에 맞는, 그리고 미국식 판타지와 현실에 맞는 이야기가 될 것인가 하는 점이 중심이 되었죠.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짜맞춰지면서 한 자리에 들어가게 되면서 드디어 새로운 배트맨의 이야기가 직접적으로 등장을 하게 된 겁니다. 배트맨 비긴즈는 바로 그 에너지를 새롭게 불어 넣기 시작한 작품이었죠.

이 속에서는 그동안 한참동안 배트맨을 따라다녔던 트라우마에 관해서 직접적으로 이야기가 진행이 되는 동시에, 영화에서 그 탄생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이 탄생과 그 영웅의 성장에 관해서 이야기가 되면서, 절대로 간단하게 이야기가 흘러갈 수 없는 부분들로서 영화가 만들어 지기 시작한 것이죠. 일례로 이 영화는 선악에 관해서 굉장히 명확한 구분이 이뤄지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선악이 절대로 간단하게 이야기가 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심지어는 선을 행한다고 생각했던 부분에서 문제가 직접적으로 발생한다는 이야기 역시 끌고 나왔죠.

그렇게 해서 배트맨의 신화가 시작이 되었습니다. 물론 평단의 반응도 그럭저럭 이었고, 흥행 성적 역시 그럭저럭이었습니다. 하지만, 워너의 욕심과 배트맨 영화로서의 가치를 직접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하게 만들 수 있는 계기로서는 충분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다크나이트가 극장가에 등장을 했고 말입니다. 다크나이트 리뷰야 제가 이 블로그에서 정말 길고 길게 썼습니다만, 시작은 했으니 굳이 이야기를 잠깐 하고 넘어가야 할 듯 하네요.

다크나이트는 많은 타이틀이 있습니다. 이미 앞서서 이야기 한 상업영화와 스토리 영화의 두 힘을 모두 가진 굉장한 작품이며, 카메라 기술적으로도 대단한 매력을 뽐낸 작품이기도 했습니다. 이는 3D와는 관계가 없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서, 제가 지지하는 방식이기도 하죠. 바로 아이맥스의 적극적인 도입이라는 건데, 이 영화는 그 매력과 에너지를 모두 잘 가지고 있었습니다. 말 그대로 관객에게 전달해야 하는 모든 것, 화면의 황홀함과 액션의 파워, 그리고 스토리의 힘을 모두 전달하는 데에 성공을 거둔 겁니다.

이후 놀란의 힘은 인셉션으로 또 한 번 이야기가 되었고, 결국에는 절대로 잊을 수 없는, 그리고 그의 능력에 관해서 의심을 하기가 정말 힘든 감독이 되었습니다. 심지어는 그가 흑백으로 찍었던 미행이 재발견으로 나왔을 정도이니 말입니다. 다크나이트와 인셉션은 두 번의 성공을 거두었고, 그만큼의 강렬한 에너지를 보여줬습니다. 문제라면, 이 상황에서 차기작이 무엇이 되었건 간에, 그 기대치는 하늘로 올라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이죠.


2. 우리의 기대는 어디로 갔는가

다크나이트는 기본적으로 악에 관해서 다루는 영화였습니다. 정확히 말 하면 악의 본질이고, 그 악의 힘이 어디까지이며 사람들에게 얼마나 강한 힘을 끼치는지에 관해서 이야기가 되는 영화에 가까웠습니다. 결국에는 조커의 매력이 영화를 지배를 하는 경향도 있었고 말입니다. (히스 레저의 죽음 역시 이 이슈에 한 몫을 했고 말입니다.) 악역이 주인공보다 더 강한 힘으로 영화를 지배하게 되는 경우는 많았지만, 다크나이트만큼 주제에 직접적으로 접근하는 악역이 영화를 지배한느 경우도 드물었죠.

심지어는 이 속에서 만화 속에서는 거의 대등한 힘을 지닌 투페이스 마져도 조커에게 답도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물론 만화 속에서도 조커가 이야기를 압도 하는 경향이 간간히 있기는 합니다만, 영화에서만큼 심하게 압도되는 경향이 드러나는 것은 아니었죠. 물론 이 속에서 과연 영화가 전달을 해야 하는 것은 좀 더 확실하게 전달이 되는 동시에, 그 속에서 그만큼의 에너지 역시 끌어내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덕분에 영화를 보면서 사람들은 조커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사회에 그의 이름을 빌려 삐뚤어진 경향을 일부러 이쪽에 투영하는 사람들도 생길 정도였죠. 그 이야기를 시작하면 골치아파지니까 일단 그 부분은 이 정도로 넘어가겠습니다. 영화가 사회에서 어떤 영향을 미쳤고, 결국에는 그만큼의 에너지로서 영화는 그 맛을 드러냈습니다. 문제라면, 이 강렬한 악역이 영화를 거의 다 소유를 해 버리는 상황까지 가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 속편은 그 악역을 대체할 수 있을 만큼의 에너지를 드러내야만 한다고 사람들이 생각하기도 했고 말입니다.

약간 다른 이야기이지만 인셉션 역시 이런 문제에 한 몫이 되었습니다. 한 남자의 절박함과 그의 소망, 그리고 그 것을 이룰 수 있는 꿈이란 주제, 사상 최대의 낚시라 불리우는 마지막까지 생각을 해 보면 이 영화가 어디로 갈 것인가에 관해서 기대를 할 수 밖에 없는 그런 부분들이 있었던 겁니다. 이 영화는 아무래도 이런 장치적인 특성 역시 굉장히 잘 발휘가 된 영화였고 그 지점에서 영화가 결국에는 성공을 거두기도 했습니다. 결국에는 관객들이 기대를 하는 지점이 굉장히 묘한 포지션이 되기도 했죠.

결국에는 이 영화는 속펴의 기대와 감독의 전편에서 보여줬던 재능으로 인해서 더더욱 기대가 되는 영화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야기의 구조, 무게, 액션성을 모두 잡아야 하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죠. 실질적으로 거의 피해갈 수도 없는 사태가 되어버리기도 했고 말입니다. 이번 영화에는 그 에너지에 관해서 굉장히 복잡하게 표현이 될 수 밖에 없던 여러 가지 면모들이 동시에 존재했고 말입니다. 무엇보다도, 한 사람의 악에 대한 투쟁에 관해서 이번에는 그 투쟁의 면모를 직접적으로 끌어 내야 하는 상황이기도 했고 말입니다. 이 와중에 묘한 부분이 발생을 했죠. 사람들의 기대점을 벗어나는 면 말입니다.

기본적으로 다크나이트에서 보여주었던 것은, 악의 압도적임으로 인해서 선택의 기로에 내몰리는 주인공의 면모 였습니다. 그 면은 숭고한 것이기도 했지만, 다른 한 면으로는 굉장히 나약한 면이기도 했죠. 결국에는 이 면에 관해서 이번에는 직접적으로 다뤄야 하는 동시에, 또 다른 악을 상대를 하는 브루스 웨인이자 배트맨의 모습을 보여줘야만 했습니다. 이 영화는 그 지점에 관해서 직접적으로 손을 대야 했습니다. 다만 이 영화에서 악의 모습은 굉장히 많은 변형이 있었죠.

전작에서는 순수한 악의 본질에 관해서 이야기를 한 바 있습니다. 이 악의 힘은 전작에서는 오히려 내면의 공포와 혐오를 끌어 내는 방식으로 주로 진행이 된 바 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영화의 한계는 상당히 독특한 방향으로 흘러갔죠. 게다가 이 영화에서는 사람들의 내면 심리에 관해서 직접적으로 다루게 되는 점에서 상당히 특별함을 자랑을 한 바 있기도 하고 말입니다. 문제는 속편에서도 이 것을 그대로 또 끌어 낼 것인가 하는 점이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속편에서도 이 스타일의 발전형을 그대로 보기를 기대를 했고 말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 스타일을 하나도 내비치지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그 악을 이용하는 면이 있기는 하지만, 이 영화에선 그 지점에 관해서 전혀 초점을 맞추지 않았죠. 오히려 전작에서 악의 힘이 그대로 보여줬던 부분들은, 일종의 도구로서 반작용의 효과를 불러 오는 부분으로서 이용이 되기는 하지만 이번에 그 악의 본질에 관해서 이야기를 더 진행을 하는 방식으로 작품을 만들어 내지는 않았습니다. 덕분에 이 영화는 전작만큼 악의 깊이에 관해서 다루지 않습니다. 공포를 일으키는 것이 목적이라기 보다는, 실제로 직접적으로 행동하고, 사람들을 내모는 악에 관해서 사람들의 반작용이 어떠한가에 관해서 이 영화가 진행이 되는 겁니다.

이는 결코 간단한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사실 이 영화에서 어떤 이야기를 한다고 할 때, 전작의 아우라는 그 악이라는 지점에서 만큼은 이 작품을 여전히 능가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사람들의 심리와, 그에 맞대응 하는 세력의 한계에 관해서 직접적으로 끄집어 내고, 그 속에서 어떤 슬픔이 같이 공존하게 만드는 것은 이번 작품에서는 이야기가 진행이 되는 면이 전혀 아닙니다. 오히려 이 작품에서 진행이 되는 것은 그 악몽에 관해서 이용을 해야만 했던 선한 세력이 결국에는 그 거짓에서 진실의 힘을 보여줘야만 하는 상황이 된 것이죠.

이 지점을 이야기를 한 이유는 단 하나, 결국에는 이 영화의 지향점에 관해서 전작의 악의 창궐을 넘는 그 무엇이 영화 속에 있다는 점입니다. 내포되어 있던 거악의 문제를 뒤집는 선의 강렬함이 이 영화의 주제에 더 가깝다고 해야 할 정도로 말입니다. 이번에는 주로 그 이야기를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3. 라이즈, 뚜껑을 열다


전작에서는 선의 딜레마에 관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 딜레마는 마지막에 큰 여운을 남겼죠. 그리고 그 여운은 결국에는 이번 작품에서 거짓으로 가려진 어떤 부분으로서 발휘가 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나태해지고, 오히려 굉장히 즐겁게 살고 있다고 생각이 되는 기묘한 세계로서 표현이 되는 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속에서 또 다른 악이 꿈틀대고 있는 면을 거의 그대로 보여주고 있기도 합니다.

이 영화는 이 속에서 대단히 복잡하고 다층적인 면을 가지게 됩니다. 이미 선한 세상이 되었고, 그 속에서 또 다른 자신만의 슬픔을 가지고 있는 어떤 영웅이 이 작품의 중심에 다시금 들어서게 된 것이죠. 이번에 그는 자신만이 알고 있는 슬픔, 그리고 그 속에서 느끼고 있는 전혀 다른 면들에 관해서 영화가 진행이 됩니다. 기본적인 슬픔에 관해서 이야기가 진행이 되는 동시에, 그가 슬픔을 이겨내야만 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소중한 사람들을 더 잃을 수도 있다는 절박함과 겹쳐서 말이죠.

이는 굉장히 복잡한 또 하나의 문제를 낳습니다. 그가 돌아와야 하는 이유는 단 하나, 그가 해결했다고 생각 하는, 자신이 희생해서 이뤘던 것들이 무너지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는 그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황에서 말이죠. 그리고 그는 그 속에서 자신이 과거에 해 왔던 것들과 여전히 같은 부분들을 그대로 해도 크게 문제가 없다고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죠. 이는 결국에는 어떤 실수와 또 다른 도약으로 이뤄지는 계기가 되고 말입니다.

영화에서 관계라는 지점에 관해 한 영웅의 마지막을 그린다는 것은 결국에는 스스로 어떤 부분이 희생이 될 것인가 라는 지점에 관해 영화가 이해가 되는 면이기도 합니다. 사실 이 영화에서 다루는 이 지점들은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죠. 오히려 한 인간의 한계와 그 한계를 뛰어 넘는 인간의 힘을 영화에서 관객에게 전달을 하고, 동시에 그 에너지에 관해서 역시 잘 해 주는 부분들을 드러내는 것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결국에는 한 영웅에 관한 대내외적인 면들이 모두 겹쳐진 것들이기도 합니다. 영웅의 완성이라는 것에 관해서, 전작에서는 자기 희생이라는 면을 보여줬지만, 그 희생이 무너졌을 경우 과연 어디까지 가야 하는가가 영화에서 직접적으로 질문으로 등장을 하게 되는 것이죠. 이 질문은 영화의 막판까지 계속이 되고, 답안은 클라이맥스에서 벌어지게 됩니다. 이 영화는 끊임없이 주인공을 이용해서 영화에서 사람들에게 질문을 하는 겁니다.

아무래도 이 과정 자체는 전작과는 전혀 다른 방식입니다. 전작에서는 오직 악의 대응에 관해서 희생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지만, 이번에는 한 인간으로서 자기 자신을 지켜야 하는 상황에 관해, 그리고 영웅으로서의 진짜 희생에 관해서 영화가 진행이 되고 있는 것이죠. 영화는 이 대단히 묘한 관계에 관해서 드디어 주인공이 직접적으로 중심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가 왜 그렇게 살아야 했는지와, 왜 그런 행동을 해야 하는지에 관해서 영화가 보여주면서도, 그 답안에 관해서 관객들이 동조를 하게 만드는 겁니다.

덕분에 이 영화에서 나오는 악은 굉장히 묘합니다. 기본적으로 전작에서 보여줬던 악은 마음에 뭔가를 심어 주는 방식의 악이었다고 한다면, 이번 악의 경우는 심는 것 보다는, 자신이 오히려 옳다고 믿고, 그리고 그 속에서 뭔가 선을 행한다고 생각을 하는, 그리고 그 것을 너무나도 쉽게 실행으로 옮겨버리는 탁월한 악을 보여주게 됩니다. 전작이 악의 본질에 관해서 이야기를 했다면, 이번에는 어떤 행동하는 악의 대응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죠.

물론 이는 이 작품에서 나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딜레마로서 등장을 하게 됩니다. 결국에는 작품에서 스스로의 힘을 보여주는 악과. 그리고 그 영악함으로 인해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로 인해서, 주인공이 어떤 어려움을 겪고, 어떤 문제로 인해서 무너졌다가 다시 일어서게 되는지에 관해서 영화가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영화의 이야기 방식이 아무래도 이런 스타일로서 계속 밀고 가고 있는지라, 아무래도 영화에서의 에너지는 직접적으로 그 속에서 본질적인 면에 관해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겁니다.

재미있는 점은, 이 속에서는 선악의 혼재가 직접적으로 드러나게 된다는 겁니다. 선이 행동을 하고, 그만큼의 에너지를 내뿜고 있지만, 그 선의 일부에서는 악으로 물들어 버린, 내지는 타성으로 젖어버린 어떤 지점이 직접적으로 등장을 하기도 합니다. 이는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사람들의 마음 속의 공포를 여전히 사용하기는 하지만, 이 공포의 지점은 또한 묘하게 결합이 되어서 선이 오히려 꿈틀대게 하는 힘을 보여주기도 하는 것이죠.

물론 이렇게 되면 아무래도 악당의 힘은 조금 약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 악이 스스로를 악임을 자각하고, 오히려 그 악을 행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들을 즐긴다기 보다는, 오히려 주변 사람들이 이건 악이다 라고 결론을 내리는 방식으로 영화가 진행이 되는 겁니다. 결이 전혀 다른 에너지인데다, 오히려 우리가 흔히 아는 방향으로서 움직이는 그런 스타일의 악역이 주인공을 위협하는 겁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악이 밀리는 것은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이 작품에서 보여주는 것은 어떤 시험이 아닌, 행동하고, 그 힘을 직접적으로 행사라는 악이라는 지점입니다. 이 악은 전작처럼 스스로 뭔가를 끌어 내기를 기대를 한다기 보다는 오히려 그냥 그 폭력을 그대로 드러내고, 그리고 그 폭력 자체가 공포를 이끌어 내는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행동 자체가 에너지를 만들어 내는 방식이죠. 그리고 그 결과 역시 어떤 선택으로서 드러나는 것이 아닌, 이미 정해져 있는 결말을 바꿔야 하는 상황을 주인공에게 주는 악이기도 합니다.

결국에 이 지점에 관해서 선택을 이번에도 선택을 강요 받는 것은 주인공의 문제입니다. 물론 이번에는 스스로 그 모든 것들을 할 수 없다는 것들 드러내고, 이번에는 조력자들을 끌어내고 있습니다. 결국에는 선을 믿는 사람들이 이번에는 진짜 있음을, 혼자 뒤집어 쓰지 않아도 됨을 이 영화에서는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셈이죠. 이 영화의 재미는 바로 이 지점입니다. 주인공이 모든 것들을 뒤집어 써야 하는가 하는 딜레마가 이번에는 그 답안을 드러낸 것이죠.

과연 선한 사람이 악한 면 까지 뒤집어 쓰고 가는가에 관해서, 전작에서는 그 문제에 관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의 기로를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그 어쩔 수 없는 선택의 마지막에는 결국에는 실패가 버티고 있죠. 진정한 성공을 가지고 간다는 것은 결국에는 스스로 또 다른 어떤 것을 희생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처럼 진행이 되기도 합니다. 이 영화에서 이야기가 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인데, 생각 이상으로 이 지점에서 역시 선악의 미묘한 이중주는 그래도 벌어지고 있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이 작품에서 조력자는 말 그대로 이미 선함으로 인정이 되어 있는 면들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는 사람이 조명을 직접적으로 받습니다. 이미 조력자인 사람들의 충성에 관해서 시험을 내고, 그리고 각자 믿는 바를 이야기 하기도 합니다. 물론 이는 전작에서도 써 먹었던 테마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확대에 관해서도 이야기가 됩니다. 이 확대는 대단히 중요한 면으로서, 결국에는 혼자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관해서 답안이 되기도 하는 것이죠.

묘한 점이라면, 이 작품에서는 흔들리는 선 외에도, 악인지 선인지 알 수 없는 문제들에 관해서 역시 묘한 답안을 내리고 있따는 점입니다. 이 속에서는 선함으로 가득 차 있던 사람이 오히려 악으로 몰리는 경우도 있고, 또한 주인공에게 시련의 한 면을 그대로 드러내는 어떤 사람이 나중에는 오히려 그를 도와주는 사람으로서 등장을 하기도 한다는 점입니다. 심지어는 어떤 사랑에 관해서 굉장히 삐뚤어진 묘한 관계까지도 직접적으로 드러나기도 하고 말입니다.

사람 마음의 묘한 지점을 비트는 방식은 인셉션에서 이미 한 번 드러낸 바 있기는 합니다만, 이번에는 무언가 마음 속에 심는다기 보다는 끌어내는 방식으로 더 많이 진행이 됩니다. 각자의 역할은 이 지점에서 발생이 되기도 하지만, 그만큼 대단히 강렬한 맛을 영화에서 보여주기도 하는 것이죠. 전작에서 마음의 오묘함을 이용하하는 사람들에 관해서 이야기를 했다면, 이번에는 그 오묘함으로 인해서 각자의 길을 가 버린 사람들에 관해서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하)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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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