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나이트 라이즈'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3.05.30 다크나이트 라이즈 연속 리뷰 (하)
  2. 2013.05.30 다크나이트 라이즈 연속 리뷰 (상)
횡설수설 영화리뷰2013. 5. 30. 09:48

(참고로 모든 오프닝은 당시에 쓴 겁니다. 유의 부탁 드립니다.)

 

 결국에는 또 다시 분량이 두배가 되고 말았습니다. 덕분에 리뷰는 사정없이 길어졌고, 리뷰가 둘로 나눠져서, 다른 리뷰들 사이에 끼어버리는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죠. 게다가 같은 날 명탐정 코난 극장판까지 봐 버린 관계로 리뷰를 둘로 나눠서 나머지 절반은 그 다음날 공개가 되어버리는 상황으로 내몰리기까지 했죠.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반기지 않는 상황이기는 했습니다만, 생각해 보니 과거의 선례가 있기는 해서 말이죠.

리뷰 상편은 이 링크를 통해서 보실 수 있습니다.

어쨌거나 리뷰 시작합니다.

 

 

 

 

 

 

 

 

3. 라이즈, 뚜껑을 열다 (계속)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이 지점에서 이야기가 진행이 됩니다. 이 터치는 생각 이상으로 강렬하고, 또한 매력적으로 작용이 됩니다. 관객에게 더 많은 과정의 이해를 보여주는 면들이 있고, 다크나이트에서와는 다르게, 말 그대로 상징성 보다는, 인간성에 관해서 더 많이 다루게 되었다는 것이죠. 그리고 그 결말에는 그 상징성과 인간성이 결합이 되어서, 진정으로 발휘가 되는 면이 어떤 것인지에 관해서 영화가 보여줬기도 하고 말입니다.

또한 이 지점은 선에 관해서는 오직 주인공만이 믿는 바를 그대로 행하는 것도 아니라는 이야기를 할 수도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는 스스로 믿는 바에 관해서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히려 악이 그 믿음을 부너트리는데, 그 저변에는 자신들이 믿고 있는 지점에 관해서 오히려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을 보여주고 있죠. 이는 강렬한 대조입니다. 주인공과 악당은 같은 과정을 거쳐서 전혀 다른 결론에 도달을 하게 되는 것이죠.

이 속에서 진짜 강함, 그리고 진짜 선이라는 것, 그리고 직접적으로 한 인간으로서 과연 진짜 마지막으로 어떻게 달려가는가에 관해서 영화가 드러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에너지 만큼은 이 영화에서 드러내는 것이 굉장히 잘 되어 있죠. 영화는 그 문제에 관해서 대단히 잘 되어 있고, 또한 그 문제에 관해서 영화가 더 많은 것들을 이야기에서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이 과정은 주인공 뿐만이 아니라, 주인공의 조력자 역시 겪고 있는 상황이 됩니다. 더 재미있는 점은 비슷한 과정을 거친 누군가 역시 묘한 선택의 기로에 빠진다는 점 역시 영화에서 드러내고 있다는 점입니다.


4. 인간성, 캐릭터

이 영화에서 주인공 캐릭터는 굉장히 재미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는 배트맨 마스크를 쓰고 있는 것을 자신이 희생한 것으로 인해서 오히려 못 하게 되어버렸죠. 자신이 가지고 있던 상징을, 어떤 이유로 인해서 스스로 용도 폐기를 해 버린 겁니다. 물론 그의 인간의 면모는 여전히 사람들을 돕겠다는 방식으로 사용이 되지만, 그렇다고 그 것이 사람들에게 그냥 좋게 비치는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그래도 그는 옳다고 믿는 바를 또 다시 행합니다.

그리곤 절망을 목격하게 됩니다. 그 속에서 다시 부활을 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죠. 이 과정 속에서 캐릭터는 많은 변화를 보여주지는 않습니다. 정확히는 이 캐릭터의 변화는 굉장히 계산이 되어서, 굉장히 세세하고 치밀하게 관객에게 다가오게 됩니다. 그리고 관객이 그에게 동조하게 만들고 있기도 하고 말입니다. 이 변화는 대단히 내밀해서, 일반적인 블록버스터 인식과는 대단히 동떨어져서 진행이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에너지 하나만큼은 대단하죠. 이 영화에서 무엇을 보여줘야 하는지에 관해서 직접적으로 스스로 알고 있다고 해야 할 만큼 잘 진행이 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진짜 선을 행하고, 다른 선을 행하는 사람들과는 다르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이용해서 더 멀리까지 갈 수 있음을 이미 알고 있기도 합니다. 이 영화는 이 지점을 대단히 세세하게 보여주지만 밀도 있게 진행을 함으로 해서 주인공에게 당위성까지 안겨주고 있습니다.

악역의 재미는 똑같은 과정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반대의 방향으로 갔음에서 발생이 됩니다. 이 영화에서 그 문제의 부분들은 굉장히 재미있게 진행이 되는데, 그 악의 일부는 자신의 욕망으로 인해서, 그리고 일부는 자신의 숭고함이 이상한 방향으로 삐뚤어짐으로 인해서, 다른 하나는 자신의 욕망의 목적을 위해 철저히 속으로 숨기는 방향으로 이뤄지게 됩니다. 이 영화는 이 다양한 악들이 보여지고, 또한 그 문제에 관해서 행할 힘과 두뇌 역시 이미 있음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 악은 스스로 악의 본질을 칭하는 전작보다는 약해 보입니다. 하지만, 결국에는 이들이 인간이고, 그들이 어떤 선택을 했는지에 관해서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죠. 관념적인 악 보다는 행동으로서 악이 된 케이스랄까요. 물론 그 부분에서 드러내는 것은 전작보다 더 강렬해 집니다. 한계는 아니지만, 이번에는 더 무서운 부분들로서 작품에 등장을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이 영화에서는 전작에서 보여주는 악의 관념적인 무서움 보다는, 속된 말로, 저 자식이 정말로 날 때려 죽일지도 모른다는 더 깊은 본능적인 공포를 일으키는 힘을 더 강하게 만들었죠. 그것도 인간 대 인간으로서 말입니다.

덕분에 이 영화는 더 많은 면들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힘이 강해졌습니다. 그리고 주변 조력 캐릭터들 역시 이런 지점에 관해서 대단히 강하게 드러내기도 했고 말입니다. 이 영화의 매력은 각자 흔들리는 문제를 가졌다는 겁니다. 주인공의 조력을 담당하는 사람들은 주인공이 스스로 희생을 한다는 문제 아래, 오히려 어쩔 수 없이 끌려 들어가는 것에 관해 스스로 인간적인 한계를 드러내고 있죠. 이는 전작에서 가장 큰 조력자였던 사람 역시 마찬가지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들 역시 인간성에 관해서 드러내게 되는 겁니다. 가장 큰 조력자의 경우는 에너지를 보여준다기 보다는 오히려 관념성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고, 그 선택에 관해서 오히려 이제는 다른 면을 드러내야 함을 그대로 역설 해 버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한 조력자는 그의 좀 더 인간사적인 문제에 관해서 드러내게 되면서, 그 문제에 관해서 좀 더 접근을 할 필요가 있다고 직접적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기도 하고 말입니다. 덕분에 영화에서는 그 어려움이 주인공이 인식을 해야 하는 부분으로서, 그리고 이겨 내야만 하는 부분으로서 등장을 하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이 사이에는 선악이 묘하게 섞인 또 한 명의 캐릭터와 스스로서 선을 행하면서, 한계를 느끼는 주인공과 비슷한 캐릭터가 등장을 하게 됩니다. 이 두 캐릭터는 각자 주인공의 조력자이면서, 또 다른 두통거리중 하나로 등장을 하기도 합니다. 이 문제는 결코 간단한 것이 아니어서, 영화에서 이야기를 매력적으로 이끌어 나가는 데에 주인공의 문제를 도와주는 데에 각자의 인간적인 면을 주인공이 또한 끌어 내 줘야 하는 부분으로서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이 묘한 지점은 결국에는 주인공의 성장에 관해서 어떤 결과성을 상징을 하는 부분들이기도 합니다.

이 영화는 이런 캐릭터들이 각자의 강렬한 비중을 가지고 등장을 합니다. 이 각자의 미중은 굉장히 중요한 것으로서, 영화에서 무엇을 보여줘야 하는지에 관해 굉장히 많은 고민과 스토리 스타일을 이야기 하는 지으로 가고 있기도 한 것이죠. 이 영화는 그 문제에 관해서 대단히 면밀하게 계산이 되어 있기도 합니다. 이쯤에서 오히려 문제가 되는 것은, 이 영화가 오히려 제대로 된 블록버스터 스타일을 그대로 유지를 하고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5. 블록버스터의 오묘한 정신이 무너지다

블록버스터 영화읫 스토리는 대게 굉장히 단순합니다. 악이 창궐하고, 주인공은 인간적인 고뇌에 시달리다가 영웅적인 희생과 선택을 하게 되죠. 그리고는 악을 처단하게 됩니다. 대부분의 작품은 이 도식을 이용을 하면서, 스토리는 장면장면의 연결과 에너지 정도를 정리 하는 선에서 적당히 마무리 짓고, 대부분 액션의 파괴력에 더 많은 힘을 보태게 됩니다. 얼마 전 개봉한 어벤져스는 이 면밀한 계산의 훌륭한 결과물이기도 했고 말입니다.

하지만, 다크나이트 라이즈는 이런 방식의 계산된 결과물과는 너무 동떨어져 있는 스타일의 작품입니다. 오히려 이 영화는 스릴러와 성장드라마에 교묘하게 액션을 끼워 맞춘 스타일에 더 가까운 상황이라고 할 수 있죠. 영화 자체가 상징과 성장으로 난무하는 통인지라, 스토리의 방향이 액션의 등장성을 계산해서 보여준다기 보다는, 액션 역시 스토리의 방향과 에너지를 위한 부분으로서 계산이 되어 있다고 해야 할 정도입니다. 이 영화는 액션이 당위성을 가지기 위한 스토리가 아닌, 스토리의 당위성, 그리고 그 상징성을 표현하기 위한 액션과 클라이맥스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상황입니다.

이는 흔히 말하는 액션 영화와 블록버스터 스타일에서 굉장히 많이 벗어나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앞서 말 했지만, 영화는 결국에는 스타일에서 승부가 나는 면들이 있고, 이 영화는 그 지점에 관해서 전혀 다른 방식을 택한 겁니다. 사실 이 영화는 이 지점에 관해서 오히려 대하 서사극에 더 가까운 스타일로서 영화가 진행이 되었죠. 과거에 자주 봤던 오래전의 영화들에서 보여줬던 고전극의 스타일을 그대로 가져와서 현대에 맞는 방식으로 다시 차용을 했다고 할까요.

이게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굉장히 독특한 방식이며, 흔하디 흔한 여름 블록버스터와는 전혀 다른 방식이라는 것이죠. 물론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에너지의 강렬함은 블록버스터의 그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전작의 면밀한 계산으로서 블록버스터와 이야기의 조화를 꽤한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서 작품이 구성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나쁘게 말 하면, 감독이 도전을 꽤했고, 그 부분이 관객에게 그대로 노출이 되었다는 식이고, 좋게 말 하면, 그 면들은 관객들이 충분히 받아들일 정도가 되었다는 점 일 겁니다.

이 영화는 그 덕에 더더욱 굉장한 빛을 발합니다. 덕분에 영화적엔 에너지 역시 넘치고 있죠. 그리고 이 에너지는 결국에는 영상에서 발하게 됩니다. 이 영화의 영상은 서사적인 느낌이 넘쳐나고, 그만큼 굉장히 내밀한 에너지를 더 많이 발산하는 방식으로 영화가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영상 스타일 역시 흔한 블록버스터와는 굉장히 다른 방향을 직접적으로 선택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죠. 덕분에 영화가 더 많은 매력을 지니기도 했고 말입니다.

심지어는 아이맥스 촬영 역시 이 지점을 더 많이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아이맥스 촬영은 전작에서 했던 면들보다, 더더욱 캐릭터들의 힘과 그 과정을 부각을 시키는 데에 더 많은 힘을 쏟고 있습니다. 영화가 그 강렬함을 이야기 하는 것에 관해서 대단히 잘 표현을 하고 있는데, 전작에서는 압도적인 풍광에 관해서 표현을 하는 쪽으로 주로 진행이 되고 있지만, 이번에는 이 영화는 관객에게 사람들의 모습과 이 영화를 전달하는 것에 관해서 더 많이 이용이 되고 있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영화는 그 문제에 관해서 대단히 잘 표현을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에서 뭔가 폭력을 이야기를 하는 것 보다 사람들의 발전에 관해서 더 많이 이야기를 하는 만큼, 그 에너지 역시 그 쪽으로 더 몰려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영화는 그 지점을 대단히 잘 발견을 했기도 하고 말입니다. 덕분에 영화에서 뭔가를 본다는 것에 관해, 블록버스터 외에도 굉장히 다양한 면들로서 이 영화를 해석을 하는 것에 관해, 아이맥스 역시 도움을 굉장히 많이 주고 있기도 합니다.

영상에 관해서 좀 더 이야기를 하자면, 이 영화는 블록버스터적 에너지 역시 굉장히 잘 표현을 해 내 주는 힘 역시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나 클라이맥스의 절박함에 관해서 영화가 직접적으로 표현을 해 주는 것에 관해서 영화가 대단히 잘 보여주고 있는 면이 있는데, 이 영화는 그 지점에 관해서 역시 대단히 잘 표현을 해 냈다고 할 수 있죠. 덕분에 보는 맛 역시 대단히 잘 표현이 되어 있기도 하고 말입니다. 덕분에 그만큼의 재미 역시 더 드러내고 있기도 했고 말입니다. 덕분에 영화가 더 잘 전달이 되고 있기도 하고 말입니다.

그럼 항상 하던 대로 배우 이야기를 좀 해야 할 듯 합니다.



6. 배우 이야기

크리스천 베일은 역시나 라는 말이 나올 만 합니다. 크리스천 베일의 연기는 절태 무시를 할 수 없는 힘을 드러내고 있죠. 전작에서도 상당히 인간적인 면모를 더 드러내는 연기를 하고 있습니다만, 이 영화에서는 그 지점과 함께 직접적으로 영화에서 그 힘에 관해서 더 많이 표현을 해 주는 그런 방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덕분에 영화를 보는 맛을 더 키워주는 힘 역시 지니고 있기도 하고 말입니다. 드디어 주인공이 제 역할을 하는 영화에서 제 연기를 보여주고 있었죠.
조셉 고든 레빗은 굉장히 재미있었습니다. 이 영화에서 그는 굉장히 순수한 역할을 하고 있는데, 그 역할을 이 정도로 자연스럽게 소화를 해 낼 거라는 생각은 전혀 못 하고 있었습니다. 주로 전작에서 상당히 묘한 부분들을 소화를 함으로 해서 영화에 촉매제 역할을 해 왔는데, 이 영화에서는 좀 더 순수한 방식으로 나옴으로 해서도, 역시나 영화의 에너지를 더 가지고 가는 촉매 역할을 톡톡히 해 내고 있습니다.

톰 하디는 전작들과 비슷한 역할입니다. 그나마 좀 달랐다고 한다면 디스 민즈 워에서 나왔던 역할이죠. 이 영화에서는 전작에서 보여줬던 여유가 있는, 그러나 그 속에서 굉장한 매력을 보여주는 방식의 연기를 영화에서 계속 해 가고 있습니다. 약간 묘한 점이라면, 이번에는 그 지점을 선한 역할이 아닌 정말 악하디 악한, 그리고 정말 저돌적인 힘을 지닌 그런 사람으로서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영화에서 압도적인 힘을 드러내는 점에 관해서 하나만으로도 합격점을 줄 만 하죠.

앤 헤서웨이 역시 대단한 연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역시나 기존의 이미지를 가진 변칙 플레이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데, 이 영화에서는 그 속에서 선과 악을 동시에 가지고 있지만, 그 의도에 관해서는 굉장히 묘한 면들을 가지고 있는 그런 역할로서 영화에 등장을 하고 있습니다.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 영화에서는 기존에 보여줬던 면들에 관해서보다 더 강렬한 매력을 지니고 있기도 하고 말입니다. 이제는 새로운 캣우먼을 받아들여야 할 정도로 말이죠.

제 입장에서 마이클 케인과 모건 프리먼을 한 카테고리에 묶는 것은 솔직히 좀 맘이 불편한 일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전작과는 역할을 서로 반대로 하고 있다고 해야 할 정도로 그들의 역할은 고정이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그들이 보여주는 에너지와 대사의 힘은 절대로 쉽게 넘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죠. 솔직히 좀 오글거릴만한 대사이기는 한데, 이 정도로 확 마음에 와닿게 하는 정도라면 배우들의 재능에서 우러나오는 것임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이런 상황은 짐 고든의 역할을 한 게리 올드만 역시 마찬가지죠.

마리옹 꼬띠아르는 대체 감독에게 어떤 미운털이 박혔는지 모르겠지만, 여전히 주인공에게 굉장히 많은 힘을 행사하면서도, 그 속에서 상당히 묘한 면들을 가지고 있는 존재로서 주로 연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는 순수함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지만, 또 다른 면 역시 한 번에 잘 드러내고 있기도 하죠. 팔색조의 매력을 영화 속에서 다 드러내고 있는 셈인데, 이 영화에서 역시 너무나도 잘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반가운 얼굴이라면 리암 니슨과 킬리언 머피입니다. 킬리언 머피는 주인공 외에 악역으로서 영화 세 편에 얼굴을 다 내민 무서운 사람이기도 합니다. 이 영화에서 감초 역할로 나오기는 하지만, 각자의 역할을 대단히 충실하게 해 냄으로 해서 영화에 활력소를 더 많이 불어 넣는 배우들이기도 하죠. 영화에서 보는 맛에 관해서 대단히 잘 보여주는 그런 맛도 있기도 하고 말입니다. 특히나 리암 니슨의 에너지는 충격이었죠.

솔직히 매튜 모딘의 경우, 이 영화에서 굉장히 반가운 얼굴인 동시에, 이 정도로 드라마틱한 변화를 영화에서 설득력있고 상징적이게 보여주는 사람도 드물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영화에서 그가 보여주는 것은 나약함의 한 패턴이었습니다만, 막판에 가서는 그 나약함을 완전히 벗어던진 한 인간이자, 영웅의 한 단면으로서 스스로 무엇을 보여줘야 하는지 역시 대단히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에너지도 있고 말입니다. 다만 이 배우 처럼 다 좋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주노 템플과 번 고먼처럼 소비가 되어버리는 양반들도 이 영화에는 있습니다.


결론. 놀란의 놀라운 변칙 플레이

길게 말 하지 않겠습니다. 이 영화는 제게는 완벽한 영화입니다. 흔히 말 하는 블록버스터 의 범주에는 포함이 되지 않습니다. 이 영화는 그 범주에 포함되기에는 너무 많은 부분들이 벗어 나 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블록버스터의 에너지를 잊지는 않은 영화임에는 분명합니다. 그 에너지를 어떻게 이용하는가게 관해서 전작과는 다른 방식으로 진행이 되어 있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이 지점은 대단히 매력적이기도 하고 말입니다.

물론 많은 분들이 다크나이트의 재림을 기다렸을 줄로 압니다. 사실 저도 그랬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다크나이트의 재림이 아닙니다. 다크나이트는 악의 관념에 관해서 말 했고, 이 영화는 인간이 숭고하게 발전하는 과정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애초에 범주가 전혀 다른 영화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죠. 어쨌든 제가 느끼기에는 그랬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 지점에 관해서 대단히 내밀했고 말입니다.

제게는 굉장한 충격이었고, 그리고 대단원의 마무리로서 충분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정도로 영화가 스스로를 뛰어넘고, 그리고 그 마무리에 관해서 황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영화를 본다는 것에 관해서, 그만큼의 즐거움과 무게라는 점을 동시에 지닌 영화이고, 그 맛에 관해서 대단히 멋있게 설명을 해 준 영화입니다. 그만큼 놀란이 이 영화를 여기에서 마무리를 해 버린 것 역시 아쉬움이 배가가 되는 영화이기도 하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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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피니
횡설수설 영화리뷰2013. 5. 30. 09:45

(참고로 모든 오프닝은 당시에 쓴 겁니다. 유의 부탁 드립니다.)

 

슬슬 올해의 기다림도 막판이 되어 갑니다. 물론 아직 007이 공개가 안 된 상황이기 때문에 그 기다림이 끝났다는 말은 도저히 할 수 없겠습니다마는, 그래도 일단은 올 여름 블록버스터 시즌에 기대했던 물건들은 거의 다 공개가 된 상황입니다. 그리고 이 영화가 아무래도 마지막 포문을 열어 줄 거라는 생각이 들고 있고 말입니다. 덕분에 오랜만에 예매 전쟁이라는 것을 굉장히 심하게 겪는 상황이 되기도 했고 말입니다.

그럼 리뷰 시작합니다.



 





1. 작품 들어가기 전 항상 하는 이야기

작품 들어가 항상 이야기 하는 바 이지만, 다크나이트는 엄청난 작품이었습니다. 상업적인 힘과 작품성 사이의 균영을 잘 잡는다는 것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죠. 그 균형은 항상 논란의 여지가 있어왔고, 둘중 하나만 잡아도 그래도 성공이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많은 이야기가 오갈 수 박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다크나이트는 그런 시스템에서 굉장히 다른 부분을 직접적으로 들고 나왔다고 할 수 있죠. 물론 그렇다고 해서 시작부터 굉장히 창대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배트맨 비긴즈는 솔직히 기대보다는 우려가 앞서는 작품이었습니다. 다른 문제 보다도 팀 버튼이 창조한 이상한 세계와 절대 용서받을 수 없는 짓을 벌인 조엘 슈마허의 배트맨의 환영을 완전히 헤치고 나와서 배트맨을 보여줘야 하는 상황이 되었을 때 과연 무엇이 진짜 매력이 될 것인가 하는 점이 굉장히 중요한 부분들이 되었던 것이죠. 아무래도 배트맨의 영화판의 분위기는 흔히 말 하는 만화적인 세계관을 그대로 받아들였던 것이 화근이었던 겁니다.

하지만, 드디어 놀란의 배트맨 비긴즈는 이 면을 부수기 시작했습니다. 배트맨의 탄생 이야기를 이야기를 하면서, 동시에 그 속에서 현대에 맞는, 그리고 미국식 판타지와 현실에 맞는 이야기가 될 것인가 하는 점이 중심이 되었죠.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짜맞춰지면서 한 자리에 들어가게 되면서 드디어 새로운 배트맨의 이야기가 직접적으로 등장을 하게 된 겁니다. 배트맨 비긴즈는 바로 그 에너지를 새롭게 불어 넣기 시작한 작품이었죠.

이 속에서는 그동안 한참동안 배트맨을 따라다녔던 트라우마에 관해서 직접적으로 이야기가 진행이 되는 동시에, 영화에서 그 탄생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이 탄생과 그 영웅의 성장에 관해서 이야기가 되면서, 절대로 간단하게 이야기가 흘러갈 수 없는 부분들로서 영화가 만들어 지기 시작한 것이죠. 일례로 이 영화는 선악에 관해서 굉장히 명확한 구분이 이뤄지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선악이 절대로 간단하게 이야기가 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심지어는 선을 행한다고 생각했던 부분에서 문제가 직접적으로 발생한다는 이야기 역시 끌고 나왔죠.

그렇게 해서 배트맨의 신화가 시작이 되었습니다. 물론 평단의 반응도 그럭저럭 이었고, 흥행 성적 역시 그럭저럭이었습니다. 하지만, 워너의 욕심과 배트맨 영화로서의 가치를 직접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하게 만들 수 있는 계기로서는 충분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다크나이트가 극장가에 등장을 했고 말입니다. 다크나이트 리뷰야 제가 이 블로그에서 정말 길고 길게 썼습니다만, 시작은 했으니 굳이 이야기를 잠깐 하고 넘어가야 할 듯 하네요.

다크나이트는 많은 타이틀이 있습니다. 이미 앞서서 이야기 한 상업영화와 스토리 영화의 두 힘을 모두 가진 굉장한 작품이며, 카메라 기술적으로도 대단한 매력을 뽐낸 작품이기도 했습니다. 이는 3D와는 관계가 없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서, 제가 지지하는 방식이기도 하죠. 바로 아이맥스의 적극적인 도입이라는 건데, 이 영화는 그 매력과 에너지를 모두 잘 가지고 있었습니다. 말 그대로 관객에게 전달해야 하는 모든 것, 화면의 황홀함과 액션의 파워, 그리고 스토리의 힘을 모두 전달하는 데에 성공을 거둔 겁니다.

이후 놀란의 힘은 인셉션으로 또 한 번 이야기가 되었고, 결국에는 절대로 잊을 수 없는, 그리고 그의 능력에 관해서 의심을 하기가 정말 힘든 감독이 되었습니다. 심지어는 그가 흑백으로 찍었던 미행이 재발견으로 나왔을 정도이니 말입니다. 다크나이트와 인셉션은 두 번의 성공을 거두었고, 그만큼의 강렬한 에너지를 보여줬습니다. 문제라면, 이 상황에서 차기작이 무엇이 되었건 간에, 그 기대치는 하늘로 올라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이죠.


2. 우리의 기대는 어디로 갔는가

다크나이트는 기본적으로 악에 관해서 다루는 영화였습니다. 정확히 말 하면 악의 본질이고, 그 악의 힘이 어디까지이며 사람들에게 얼마나 강한 힘을 끼치는지에 관해서 이야기가 되는 영화에 가까웠습니다. 결국에는 조커의 매력이 영화를 지배를 하는 경향도 있었고 말입니다. (히스 레저의 죽음 역시 이 이슈에 한 몫을 했고 말입니다.) 악역이 주인공보다 더 강한 힘으로 영화를 지배하게 되는 경우는 많았지만, 다크나이트만큼 주제에 직접적으로 접근하는 악역이 영화를 지배한느 경우도 드물었죠.

심지어는 이 속에서 만화 속에서는 거의 대등한 힘을 지닌 투페이스 마져도 조커에게 답도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물론 만화 속에서도 조커가 이야기를 압도 하는 경향이 간간히 있기는 합니다만, 영화에서만큼 심하게 압도되는 경향이 드러나는 것은 아니었죠. 물론 이 속에서 과연 영화가 전달을 해야 하는 것은 좀 더 확실하게 전달이 되는 동시에, 그 속에서 그만큼의 에너지 역시 끌어내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덕분에 영화를 보면서 사람들은 조커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사회에 그의 이름을 빌려 삐뚤어진 경향을 일부러 이쪽에 투영하는 사람들도 생길 정도였죠. 그 이야기를 시작하면 골치아파지니까 일단 그 부분은 이 정도로 넘어가겠습니다. 영화가 사회에서 어떤 영향을 미쳤고, 결국에는 그만큼의 에너지로서 영화는 그 맛을 드러냈습니다. 문제라면, 이 강렬한 악역이 영화를 거의 다 소유를 해 버리는 상황까지 가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 속편은 그 악역을 대체할 수 있을 만큼의 에너지를 드러내야만 한다고 사람들이 생각하기도 했고 말입니다.

약간 다른 이야기이지만 인셉션 역시 이런 문제에 한 몫이 되었습니다. 한 남자의 절박함과 그의 소망, 그리고 그 것을 이룰 수 있는 꿈이란 주제, 사상 최대의 낚시라 불리우는 마지막까지 생각을 해 보면 이 영화가 어디로 갈 것인가에 관해서 기대를 할 수 밖에 없는 그런 부분들이 있었던 겁니다. 이 영화는 아무래도 이런 장치적인 특성 역시 굉장히 잘 발휘가 된 영화였고 그 지점에서 영화가 결국에는 성공을 거두기도 했습니다. 결국에는 관객들이 기대를 하는 지점이 굉장히 묘한 포지션이 되기도 했죠.

결국에는 이 영화는 속펴의 기대와 감독의 전편에서 보여줬던 재능으로 인해서 더더욱 기대가 되는 영화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야기의 구조, 무게, 액션성을 모두 잡아야 하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죠. 실질적으로 거의 피해갈 수도 없는 사태가 되어버리기도 했고 말입니다. 이번 영화에는 그 에너지에 관해서 굉장히 복잡하게 표현이 될 수 밖에 없던 여러 가지 면모들이 동시에 존재했고 말입니다. 무엇보다도, 한 사람의 악에 대한 투쟁에 관해서 이번에는 그 투쟁의 면모를 직접적으로 끌어 내야 하는 상황이기도 했고 말입니다. 이 와중에 묘한 부분이 발생을 했죠. 사람들의 기대점을 벗어나는 면 말입니다.

기본적으로 다크나이트에서 보여주었던 것은, 악의 압도적임으로 인해서 선택의 기로에 내몰리는 주인공의 면모 였습니다. 그 면은 숭고한 것이기도 했지만, 다른 한 면으로는 굉장히 나약한 면이기도 했죠. 결국에는 이 면에 관해서 이번에는 직접적으로 다뤄야 하는 동시에, 또 다른 악을 상대를 하는 브루스 웨인이자 배트맨의 모습을 보여줘야만 했습니다. 이 영화는 그 지점에 관해서 직접적으로 손을 대야 했습니다. 다만 이 영화에서 악의 모습은 굉장히 많은 변형이 있었죠.

전작에서는 순수한 악의 본질에 관해서 이야기를 한 바 있습니다. 이 악의 힘은 전작에서는 오히려 내면의 공포와 혐오를 끌어 내는 방식으로 주로 진행이 된 바 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영화의 한계는 상당히 독특한 방향으로 흘러갔죠. 게다가 이 영화에서는 사람들의 내면 심리에 관해서 직접적으로 다루게 되는 점에서 상당히 특별함을 자랑을 한 바 있기도 하고 말입니다. 문제는 속편에서도 이 것을 그대로 또 끌어 낼 것인가 하는 점이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속편에서도 이 스타일의 발전형을 그대로 보기를 기대를 했고 말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 스타일을 하나도 내비치지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그 악을 이용하는 면이 있기는 하지만, 이 영화에선 그 지점에 관해서 전혀 초점을 맞추지 않았죠. 오히려 전작에서 악의 힘이 그대로 보여줬던 부분들은, 일종의 도구로서 반작용의 효과를 불러 오는 부분으로서 이용이 되기는 하지만 이번에 그 악의 본질에 관해서 이야기를 더 진행을 하는 방식으로 작품을 만들어 내지는 않았습니다. 덕분에 이 영화는 전작만큼 악의 깊이에 관해서 다루지 않습니다. 공포를 일으키는 것이 목적이라기 보다는, 실제로 직접적으로 행동하고, 사람들을 내모는 악에 관해서 사람들의 반작용이 어떠한가에 관해서 이 영화가 진행이 되는 겁니다.

이는 결코 간단한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사실 이 영화에서 어떤 이야기를 한다고 할 때, 전작의 아우라는 그 악이라는 지점에서 만큼은 이 작품을 여전히 능가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사람들의 심리와, 그에 맞대응 하는 세력의 한계에 관해서 직접적으로 끄집어 내고, 그 속에서 어떤 슬픔이 같이 공존하게 만드는 것은 이번 작품에서는 이야기가 진행이 되는 면이 전혀 아닙니다. 오히려 이 작품에서 진행이 되는 것은 그 악몽에 관해서 이용을 해야만 했던 선한 세력이 결국에는 그 거짓에서 진실의 힘을 보여줘야만 하는 상황이 된 것이죠.

이 지점을 이야기를 한 이유는 단 하나, 결국에는 이 영화의 지향점에 관해서 전작의 악의 창궐을 넘는 그 무엇이 영화 속에 있다는 점입니다. 내포되어 있던 거악의 문제를 뒤집는 선의 강렬함이 이 영화의 주제에 더 가깝다고 해야 할 정도로 말입니다. 이번에는 주로 그 이야기를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3. 라이즈, 뚜껑을 열다


전작에서는 선의 딜레마에 관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 딜레마는 마지막에 큰 여운을 남겼죠. 그리고 그 여운은 결국에는 이번 작품에서 거짓으로 가려진 어떤 부분으로서 발휘가 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나태해지고, 오히려 굉장히 즐겁게 살고 있다고 생각이 되는 기묘한 세계로서 표현이 되는 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속에서 또 다른 악이 꿈틀대고 있는 면을 거의 그대로 보여주고 있기도 합니다.

이 영화는 이 속에서 대단히 복잡하고 다층적인 면을 가지게 됩니다. 이미 선한 세상이 되었고, 그 속에서 또 다른 자신만의 슬픔을 가지고 있는 어떤 영웅이 이 작품의 중심에 다시금 들어서게 된 것이죠. 이번에 그는 자신만이 알고 있는 슬픔, 그리고 그 속에서 느끼고 있는 전혀 다른 면들에 관해서 영화가 진행이 됩니다. 기본적인 슬픔에 관해서 이야기가 진행이 되는 동시에, 그가 슬픔을 이겨내야만 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소중한 사람들을 더 잃을 수도 있다는 절박함과 겹쳐서 말이죠.

이는 굉장히 복잡한 또 하나의 문제를 낳습니다. 그가 돌아와야 하는 이유는 단 하나, 그가 해결했다고 생각 하는, 자신이 희생해서 이뤘던 것들이 무너지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는 그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황에서 말이죠. 그리고 그는 그 속에서 자신이 과거에 해 왔던 것들과 여전히 같은 부분들을 그대로 해도 크게 문제가 없다고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죠. 이는 결국에는 어떤 실수와 또 다른 도약으로 이뤄지는 계기가 되고 말입니다.

영화에서 관계라는 지점에 관해 한 영웅의 마지막을 그린다는 것은 결국에는 스스로 어떤 부분이 희생이 될 것인가 라는 지점에 관해 영화가 이해가 되는 면이기도 합니다. 사실 이 영화에서 다루는 이 지점들은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죠. 오히려 한 인간의 한계와 그 한계를 뛰어 넘는 인간의 힘을 영화에서 관객에게 전달을 하고, 동시에 그 에너지에 관해서 역시 잘 해 주는 부분들을 드러내는 것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결국에는 한 영웅에 관한 대내외적인 면들이 모두 겹쳐진 것들이기도 합니다. 영웅의 완성이라는 것에 관해서, 전작에서는 자기 희생이라는 면을 보여줬지만, 그 희생이 무너졌을 경우 과연 어디까지 가야 하는가가 영화에서 직접적으로 질문으로 등장을 하게 되는 것이죠. 이 질문은 영화의 막판까지 계속이 되고, 답안은 클라이맥스에서 벌어지게 됩니다. 이 영화는 끊임없이 주인공을 이용해서 영화에서 사람들에게 질문을 하는 겁니다.

아무래도 이 과정 자체는 전작과는 전혀 다른 방식입니다. 전작에서는 오직 악의 대응에 관해서 희생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지만, 이번에는 한 인간으로서 자기 자신을 지켜야 하는 상황에 관해, 그리고 영웅으로서의 진짜 희생에 관해서 영화가 진행이 되고 있는 것이죠. 영화는 이 대단히 묘한 관계에 관해서 드디어 주인공이 직접적으로 중심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가 왜 그렇게 살아야 했는지와, 왜 그런 행동을 해야 하는지에 관해서 영화가 보여주면서도, 그 답안에 관해서 관객들이 동조를 하게 만드는 겁니다.

덕분에 이 영화에서 나오는 악은 굉장히 묘합니다. 기본적으로 전작에서 보여줬던 악은 마음에 뭔가를 심어 주는 방식의 악이었다고 한다면, 이번 악의 경우는 심는 것 보다는, 자신이 오히려 옳다고 믿고, 그리고 그 속에서 뭔가 선을 행한다고 생각을 하는, 그리고 그 것을 너무나도 쉽게 실행으로 옮겨버리는 탁월한 악을 보여주게 됩니다. 전작이 악의 본질에 관해서 이야기를 했다면, 이번에는 어떤 행동하는 악의 대응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죠.

물론 이는 이 작품에서 나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딜레마로서 등장을 하게 됩니다. 결국에는 작품에서 스스로의 힘을 보여주는 악과. 그리고 그 영악함으로 인해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로 인해서, 주인공이 어떤 어려움을 겪고, 어떤 문제로 인해서 무너졌다가 다시 일어서게 되는지에 관해서 영화가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영화의 이야기 방식이 아무래도 이런 스타일로서 계속 밀고 가고 있는지라, 아무래도 영화에서의 에너지는 직접적으로 그 속에서 본질적인 면에 관해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겁니다.

재미있는 점은, 이 속에서는 선악의 혼재가 직접적으로 드러나게 된다는 겁니다. 선이 행동을 하고, 그만큼의 에너지를 내뿜고 있지만, 그 선의 일부에서는 악으로 물들어 버린, 내지는 타성으로 젖어버린 어떤 지점이 직접적으로 등장을 하기도 합니다. 이는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사람들의 마음 속의 공포를 여전히 사용하기는 하지만, 이 공포의 지점은 또한 묘하게 결합이 되어서 선이 오히려 꿈틀대게 하는 힘을 보여주기도 하는 것이죠.

물론 이렇게 되면 아무래도 악당의 힘은 조금 약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 악이 스스로를 악임을 자각하고, 오히려 그 악을 행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들을 즐긴다기 보다는, 오히려 주변 사람들이 이건 악이다 라고 결론을 내리는 방식으로 영화가 진행이 되는 겁니다. 결이 전혀 다른 에너지인데다, 오히려 우리가 흔히 아는 방향으로서 움직이는 그런 스타일의 악역이 주인공을 위협하는 겁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악이 밀리는 것은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이 작품에서 보여주는 것은 어떤 시험이 아닌, 행동하고, 그 힘을 직접적으로 행사라는 악이라는 지점입니다. 이 악은 전작처럼 스스로 뭔가를 끌어 내기를 기대를 한다기 보다는 오히려 그냥 그 폭력을 그대로 드러내고, 그리고 그 폭력 자체가 공포를 이끌어 내는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행동 자체가 에너지를 만들어 내는 방식이죠. 그리고 그 결과 역시 어떤 선택으로서 드러나는 것이 아닌, 이미 정해져 있는 결말을 바꿔야 하는 상황을 주인공에게 주는 악이기도 합니다.

결국에 이 지점에 관해서 선택을 이번에도 선택을 강요 받는 것은 주인공의 문제입니다. 물론 이번에는 스스로 그 모든 것들을 할 수 없다는 것들 드러내고, 이번에는 조력자들을 끌어내고 있습니다. 결국에는 선을 믿는 사람들이 이번에는 진짜 있음을, 혼자 뒤집어 쓰지 않아도 됨을 이 영화에서는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셈이죠. 이 영화의 재미는 바로 이 지점입니다. 주인공이 모든 것들을 뒤집어 써야 하는가 하는 딜레마가 이번에는 그 답안을 드러낸 것이죠.

과연 선한 사람이 악한 면 까지 뒤집어 쓰고 가는가에 관해서, 전작에서는 그 문제에 관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의 기로를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그 어쩔 수 없는 선택의 마지막에는 결국에는 실패가 버티고 있죠. 진정한 성공을 가지고 간다는 것은 결국에는 스스로 또 다른 어떤 것을 희생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처럼 진행이 되기도 합니다. 이 영화에서 이야기가 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인데, 생각 이상으로 이 지점에서 역시 선악의 미묘한 이중주는 그래도 벌어지고 있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이 작품에서 조력자는 말 그대로 이미 선함으로 인정이 되어 있는 면들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는 사람이 조명을 직접적으로 받습니다. 이미 조력자인 사람들의 충성에 관해서 시험을 내고, 그리고 각자 믿는 바를 이야기 하기도 합니다. 물론 이는 전작에서도 써 먹었던 테마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확대에 관해서도 이야기가 됩니다. 이 확대는 대단히 중요한 면으로서, 결국에는 혼자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관해서 답안이 되기도 하는 것이죠.

묘한 점이라면, 이 작품에서는 흔들리는 선 외에도, 악인지 선인지 알 수 없는 문제들에 관해서 역시 묘한 답안을 내리고 있따는 점입니다. 이 속에서는 선함으로 가득 차 있던 사람이 오히려 악으로 몰리는 경우도 있고, 또한 주인공에게 시련의 한 면을 그대로 드러내는 어떤 사람이 나중에는 오히려 그를 도와주는 사람으로서 등장을 하기도 한다는 점입니다. 심지어는 어떤 사랑에 관해서 굉장히 삐뚤어진 묘한 관계까지도 직접적으로 드러나기도 하고 말입니다.

사람 마음의 묘한 지점을 비트는 방식은 인셉션에서 이미 한 번 드러낸 바 있기는 합니다만, 이번에는 무언가 마음 속에 심는다기 보다는 끌어내는 방식으로 더 많이 진행이 됩니다. 각자의 역할은 이 지점에서 발생이 되기도 하지만, 그만큼 대단히 강렬한 맛을 영화에서 보여주기도 하는 것이죠. 전작에서 마음의 오묘함을 이용하하는 사람들에 관해서 이야기를 했다면, 이번에는 그 오묘함으로 인해서 각자의 길을 가 버린 사람들에 관해서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하)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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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