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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5.22 히어애프터 - 이해와 치유의 관계
횡설수설 영화리뷰2013. 5. 22. 10:48

(참고로 모든 오프닝은 당시에 쓴 겁니다. 유의 부탁 드립니다.)

 

이번주에는 원래 두 편이었습니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도 볼 예정이었죠. 하지만 제가 상황이 더더욱 좋지 않은 관계로, 결국에는 히어에프터 하나만 보기로 했습니다. 아무래도 이 쪽이 그나마 이름이 있는 감독인데다, 찾기도 좀 더 쉬웠거든요. 뭐, 그렇다는 이야기 입니다. 사실, 이 외에는 입맞에 맞아 보이는 영화도 없었고 말이죠. 이런 주간도 있고 저런 주간도 있는거 아니겠습니까마는, 그래도 한주에 쏠리는 현상이 좀 심한 것 같습니다.

그럼 리뷰 시작하죠.



 





제가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를 직접적으로 골라 보기 시작한 때는 사실 얼마 되지 않습니다. 제가 직접적으로 극장에서 영화를 본 케이스도 얼마 안 되고 말입니다. 아무튼간에 제가 골라서 보게 된 작품은 체인질링이 가장 먼저였죠. 사실, 그 이전에도 여러 작품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바 있기는 합니다만, 아버지의 깃발의 경우는 정말 제 취향에서 벗어나는 영화였고,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는 타이밍을 놓쳐서 구매를 못 했으며, 그랜 토리노의 경우는 정품 찾아 다니다가 고생 정말 많이 하고 그냥 포기한 케이스입니다.

아무래도 결국에는 제가 본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영화는 체인질링 하나라는 이야기가 됩니다. (사실 제가 본 것은 오히려 배우로서의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더 많습니다.) 하지만, 그랜 토리노의 경우는 결국 봤고, 아버지의 깃발의 경우는 그래도 아는 사람의 도움으로 띄엄띄엄이나마 봤죠. 그러고 보니 아무도 기억 못 하는 영화중 하나인 인빅터스라는 영화도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작품이죠.

아무튼간에,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가장 기묘한 점이라면 이겁니다. 그는 분명히 거의 굉장히 힘이 들어가는 그런 스릴러, 내지는 액션 영화에 주로 출연을 했습니다만, 이후에 그가 직접적으로 감독으로 나설 때에는 이런 영화가 아닌 좀 더 강렬한 파괴력을 가진 드라마 스타일의 영화를 주로 연출을 했다는 겁니다. 물론 초기에는 서부극 연출도 꽤 하기는 했습니다만, 그가 직접적으로 감독으로서, 제작자로서 성공을 하게 된 계기는 바로 이런 영화들의 연속과 관련이 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간에, 제가 이 감독에게 기대를 하는 것은 사실 이미 체인질링때 모두 굳어져 있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그가 다루는 영화에서 가장 좋은 부분이기도 한데, 바로 사람들의 강인함을 굳이 총을 들지 않고도 표현을 한다는 점입니다. 개인적으로 바로 이 면이 좋았고, 이 면에 관해서 영화에서 기대를 걸게 된 것이죠. 이런 면에 관해서 그는 상당히 많은 소재를 가지고 비슷한 영화를 만들어 왔기도 하고 말입니다.

사실 그의 영화는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특히나 그랜토리노와 체인질링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도 한데, 한 작은 평범하기 짝이 없는 인간의 강함에 관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죠. 이 부분은 사실 실체가 없는 부분이기도 합니다만, 분명한 것은, 인간이 어느 순간이 넘어가면 이 면을 얼마든지 발휘를 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 면의 발휘와 역경이라는 것에 관해서 이 두 영화는 굉장히 잘 드러낸 케이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 두 영화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만, 아버지의 깃발은 바로 이 면만을 보여줬다고 하기에는 약간 어려운 문제가 걸리는 그런 영화입니다. 기본적으로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인 전쟁이라는 부분이 직접적으로 드러나 있고, 실제로 미국의 전쟁사 중에서 가장 치열한 전투의 한 가운데라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만, 정작 이 부분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그 이후의 병사들의 삶이라는 부분을 다룬 것이죠. 이 부분에 관해서 이 영화는 한 인간의 강함을 다루기도 했지만, 한 때 강했던 사람들이 평범하게 돌아가는 이야기도 했습니다.

이런 부분에서 가장 묘한 것은 아무래도 인빅터스입니다. 이 영화에서는 기본적으로 넬슨 만델라라는 실제 인물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고, 또한 이 상황에서 인종의 편견을 하나로 묶는 이야기를 하면서, 동시에 흑인 대통령 이야기를 하는 데에 있어서 굉장히 복잡한 이야기가 될 거라는 부분들이 많았었습니다만, 영화는 일단 스포츠중에서 럭비라는 백인의 스포츠를 내세워서 일종의 통합 과정을 드라마틱하게 묘사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이 부분은 사실 좀 애매하긴 했습니다. 사실, 스포츠라는 면은 좀 리드미컬하게 보여줘야 하는 부분들이 있는데 이 영화는 이런 리드미컬함은 아무래도 빠졌으니 말입니다. 물론 이 영화는 통속적인 스포츠 영화의 스타일이라고 하기는 애초에 무리가 있는 작품이기는 했습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스포츠가 아닌 것도 아니니 말이죠.

아무튼간에, 그래도 잘 만든 영화라는 평가를 들었던 이유는 결국에는 이런 스타일을 가지고 있는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데에 있어서 자신의 스타일을 뚝심있게 밀어 붙이면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영화 내에 내포시키는 데에 매우 성공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면에서 보자면, 분명히 기존의 방식에서는 벗어났지만, 새로운 면이 있다는 점 정도는 아실 거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아무튼간에, 이 모든 영화를 하나로 관통하고 있는 또 하나의 특징이 있는데, 영화에서 결코 판타지에 가까운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런 점에서 사실 사랑을 받아오기도 했습니다. 영화의 주인공들이 순전히 인간의 힘으로 성공을 거두고, 자신의 힘에 관해서 앞으로 믿을 수 있는, 그리고 그 힘이 앞으로도 세상을 바꿀 수 있으리라는 그런 면을 가지고 있는 영화를 만들었다는 겁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초장부터 대놓고 신비주의를 가지고 옵니다. 물론 이 신비주의는 이 영화에서 도구적인 면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기는 합니다만, 이 영화에서 절대로 이 면을 그냥 그렇게 쉽게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변화는 솔직히 그렇게 쉬운 부분이 아니죠. 특히나 감독의 경향이 이런 영화를 만드는 경우가 없었다는 것을 생각을 해 보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재로 제한을 하고 있기는 합니다만, 이 영화에서 이 소재는 굉장히 강렬합니다. 아무래도 이 면이 처음 등장하는 부분부터 스케일이 이전과는 굉장히 다르기 때문인 것도 있죠. 이 소재가 처음부터 굉장히 강렬하게 다가옴으로 해서, 영화는 애초부터 논란의 여지를 남기기 시작합니다. 과연 이 감독이 이 너무나도 새로운 이야기를 감당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서 말입니다.

일단 제 경우는, 이런 부분에 관해서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이 굉장히 잘 해결을 했다는 생각을 합니다. 기본적인 이야기의 부분에서 이렇게 쉽게 이런 부분들을 끄집어 낼 수 있다는 것 부터가 굉장히 모험적이기도 하지만, 이 모험적인 부분을 처응부터 직접적으로 도입을 한다는 것이 기본적으로 이 소재를 어떻게 요리를 할 지 자신이 있다는 이야기라고 전 생각을 했습니다. 기본적으로 이 소재가 관객에게 좀 더 쉽게 받아들여지게 하는 효과도 분명히 있고 말입니다.

이런 것에 관해서 이 영화는 굉장히 잘 알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후반으로 가서도 이런 방식의 이야기를 일정 부분 구조적으로 이용을 하는 것이 눈에 보이기도 합니다. 물론 이 부분들이 매력으로 변할 것인가에 관해서는 이후 이야기를 어떻게 요리를 하는가에 따라서 문제가 달라지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일단 보는 데에 있어서는 정말 매력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영화는 바로 그 부분을 노린 것이죠.

물론 나머지 부분은 클린트 이스트우드식 이야기로 채워가고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이름이 이 정도로 크게 차지하는 이유는 결국에는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다만, 이 영화에서는 기본적인 부분에 있어서 사람이 세 사람이 등장한다는 점이 다릅니다. 이 세 사람은 각자 문제를 가지고 있고, 영화 막판으로 가면 예상하시듯이, 이 세사람의 문제가 각자에 의해 해결이 되기 시작합니다.

이 면에서 이 영화는 캐릭터 영화의 스타일을 굉장히 많이 차용을 하기 시작합니다. 덕분에 이 영화는 캐릭터적인 면이 슬슬 극대화되기 시작합니다. 기본적으로 세 사람은 매우 다른 사람입니다. 한 사람은 일종의 초능력을 이용할 수 있지만, 이 초능력으로 인해서 흔들리고 있는 사람이고, 한 사람은 자신과 너무나 가까운 친구이자 형제를 잃었으며, 또 다른 한 사람은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나면서, 자신이 그 죽음의 사이에서 본 것에 관해서 시달리기 시작합니다.

사실 이렇게 늘어놓고 보면, 이 영화는 호러 영화의 방향이라고 생각해도 별 문제가 없는 부분들이 몇 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렇게 가지 않습니다. 이 영화에서는 이 세 사람에 관해서 계속해서 설명을 하고, 이 세 사람이 일종의 결심을 하게 되는 계기까지 계속해서 파고 들어갑니다. 물론 이 계기로 한 번에 도달하는 것은 아닙니다. 게다가 이 영화에서는 이 계기가 영화의 주요 스토리도 아니고 말입니다.

이 영화에서 이 세 사람의 성격과 그들의 문제를 계속해서 보여줍니다. 이 문제는 사실 해결하기가 굉장히 곤한한 부분들이 많죠. 보통은 이런 이야기를 그냥 일종의 촉발점으로 삼고, 그냥 죽 가게 마련입니다만, 이 영화에서는 이 어려움으로 인해서 계속해서 나락으로 가는 과정을 계속해서 포착을 합니다. 사실상, 그냥 내리막으로 가는 과정을 정말 악착같이 따라 간다고 해도 될 정도로 영화는 그들을 집요하게 쫓아갑니다.

이 와중에 그들은 도움에 관해서 이야기를 합니다. 각자가 도움을 필요로 하고, 숨기려고 합니다. 이 문제에 관해서 평소에 알던 사람들이나, 깊게 생각을 해 보지 않은 사람들은 이 문제에 관해서 그다지 좋은 해답을 내리지 못하고, 그냥 떠나버리기도 합니다. 이는 결국에는 영화에서 이 사람들에게 좀 더 많은 부담과 고립감으로 연결이 되는 것이죠. 이 고립이 영화에서 관객들에게 정말 절절하게 전해져 오는데, 솔직히 좀 너무 절절하게 전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쯤 되면 이 영화에서 문제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사실 이런 영화는 관객들이 비슷한 사람들을 본다는 이유로 인해서 좀 더 흡입력이 높은 편입니다. 관객들이 배우들에게 일종의 감정적인 유대를 가져 온다는 것이죠. 이 영화의 경우는 이 감정적인 유대가 좀 너무 무겁게 다가온다는 흠이 좀 보입니다. 사실 이런 것에 관해서 많은 영화들이 미덕으로 작용하기는 합니다만, 이 영화는 아무래도 사람들의 어두운 면이 아닌, 치유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이런 부분들이 좀 과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런 면들을 이해를 하기 시작하면, 이 영화는 오히려 관객에게 화답을 합니다. 이 면에 관해서는 영화가 일종의 중반의 문제라고 할 수 있는 부분들에 관해서 넘어간 다음에 발현되는 부분들인데, 이 중반의 문제란, 이야기가 자칫 늘어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 이야기는 다행히 그렇게 늘어지는 편은 아닙니다만, 솔직히 좀 묘하게 길게 느껴진다고 생각되는 부분들이 간간히 등장을 하기는 합니다. 아주 극소수이기는 하지만 말이죠.

아무튼간에, 이런 부분들이 해결되고 나서 이 영화는 일종의 매력 포인트를 또 다시 잘 찾아가기 시작합니다. 기본적으로 이런 것에 관해서 이 영화는 굉장히 잘 알고 있는 면이라는 듯이 보여주는데, 실제로 잘 알고 있습니다. 이 부분의 해결점은, 결국에는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들의 서로서로의 도움이라는 점이 굉장히 절실하게 다가오는 부분이니 말입니다.

물론 이 문제가 중반 이후에 해결되는 이유는 다분히 영화적인 이유입니다. 쉽게 말해서 거리상의 이유라는 부분인데, 이 영화에서는 이 거리라는 부분이 굉장히 재미있게 잘 표현이 되어 있습니다. 사실 이 영화가 중반까지도 사람들이 계속해서 하강을 그리게 되는 이유가 여기 있기도 합니다. 이들이 모이는 이야기는 결국에는 중반을 넘어 후반으로 가야 이야기를 할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이 영화는 바로 이런 면을 잘 해결을 한 케이스입니다. 이 해결법은 앞서서 설명을 드렸죠. 그리고 이 해결의 마지막은 드디어 그들의 인간성의 치유라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인간성의 치유라는 부분은 대단히 기묘하게 매력적입니다. 영화에서 이 인간성의 치유는 좀 묘한 부분이 있기는 한데, 결국에는 서로의 이해라는 부분으로 이끌어 나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이해라는 부분이 앞에서는 안 되어서 오히려 이들이 침체기로 빠지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 부분에서는 되어가고 있는 것이죠.

물론 이 차이는 각자의 문제가 안고 있는 부분들에서 기인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의 문제는 굉장히 복합적인 동시에, 서로 상호보완적인 부분이 성격상에서 드러나게 됩니다. 이 부분들에 관해서 영화는 적당히 보여주고 있는데, 앞부분은 바로 이런 상호 보완적인 부분에 관해서 단서를 꽤 많이 제공을 하기도 합니다. 상당히 인상 깊게 나오기 때문에, 이 단서에 관해서 영화에서 계속 기억하게 되기도 하고 말입니다.

이렇게 되면 일종의 키를 지니고 있는 배우들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결국에는 캐릭터성에 관해 영화가 굉장히 많은 투자를 하고 있기도 말입니다.

이 영화에서 일단 가장 눈에 띄는 배우는 맷 데이먼입니다. 맷 데이먼은 이번에 인빅터스 이후에 두 번째 감독과 호흡을 맞추는 경우인데, 아무래도 그간 쌓아온 캐릭터성을 적당히 이용하면서도, 전혀 다른 면을 드러내야 하는 그런 캐릭터를 하고 있습니다. 사실상 드라마성이라는 부분에 있어서 웬만한 부분은 다 가지고 있는 그런 캐릭터라고 해도 거의 문제가 없는 수준이죠.

맷 데이먼은 이 영화에서 바로 이런 면을 굉장히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능력이 자신의 일상을 모두 박살낼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저주라고 생각하는 그런 면을 잘 표현을 하면서, 동시에 이 문제에 관해서 대단히 매력적으로 잘 표현을 하고 있죠. 사실, 제가 본 영화에서 이 정도로 그가 음울함에 깊이를 더하는 경우는 이 영화 외에는 별로 본 기억이 없군요.

이 영화에서는 또 한명의 배우가 다른 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세실 드 프랑스는 바로 이런 면을 보여주는데, 이 영화에서는 굉장히 묘한 매력적인 부분들을 보여줍니다. 사실, 좀 나이가 들어보인다는 면이 살짝 있기는 합니다만, 매력적인 여성이 가지기 힘든 그런 면들에 관해서 영화에서 매우 강렬하게 표현을 하는 데에 일조를 하고 있죠. 그녀는 영화에서 이 영화의 주제를 표현을 하는 데에 있어서의 소재로 이용이 되는 것도 매우 잘 해 내고 있습니다.

가장 재미있는 배우라면 프랭키 맥라렌과 조지 맥라렌입니다. 이 두 사람은 쌍둥이라 그런지 자신들의 역을 섞어서 배역을 했더군요;;; 아무튼 이 영화에서 친구이자 형제를 너무나도 그리워하는, 그런 이유로 인해서 안 그래도 조용한 성격이 더 나락으로 가 버리는 그런 연기를 보여주고 있는데, 나이 답지 않게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영화에서 어린애 다운 천진난만함을 여전히 잘 보여주기도 하고 말입니다. 이런 점에 관해서 영화가 잘 잡아 내기도 하지만 말이죠.

이런 평가는 사실 다른 배우들에게도 돌아갑니다. 이 영화에서 보조적으로 등장하느 배우들은 이들의 문제이자, 이 문제를 이해를 못하는 일반인의 경우를 상징화 한 경우라고 할 수도 있는데, 이 영화에서 흔히 말하는 감정의 면모라는 것을 극대화 시키는 데에 있어서 탁월한 효과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물론 각자의 연기력 역시 대단히 훌륭하기도 하고 말입니다.

뭐, 그렇습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입니다. 새로운 시도가 꽤 많이 보이는 영화인 동시에, 클린트 이스트우드라는 감독이 무엇을 보여줄 수 있는가에 관한 시험으로 본다면 이 영화는 굉장한 성공작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의 감정은 대단히 느긋하면서도 파괴력이 있으며, 이런 면에 관해서 영화는 대단히 잘 활용을 하고 있기도 하고 말입니다. 물론 다른 명작들과 비교를 하면 좀 애매한 부분이 없지 않아 있기는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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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