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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5.29 제7의 봉인 - 영화가 당신을 데려다 줄 겁니다.
횡설수설 영화리뷰2013. 5. 29. 13:19

(참고로 모든 오프닝은 당시에 쓴 겁니다. 유의 부탁 드립니다.)

 

이번주는 정말 미묘한 주간입니다. 영화 배치 역시 애매하기 짝이 없는 주간이기도 하고 말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가 과연 어떤 스타일을 띄게 될 지가 정말 궁금하기는 했는데, 다른 영화들이 알아서 빠져주시거나, 아니면 개봉일이 갑자기 바뀌는 상황도 벌어져서 말이죠. 개인적으로 일정에 맞춰서 해 놓은 것들이 있기 때문에 갑자기 비는건 솔직히 달갑지 않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일단은 비었으니 하기는 해야죠.

그럼 리뷰 시작합니다.



 





이 영화는 이 한 줄이면 리뷰가 끝일 수도 있습니다
. 이 영화는 잉마르 베리만의 걸작입니다. 이렇게 리뷰를 끝낼 수도 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이 영화 정도로 제게 충격을 준 영화는 정말 오래간만입니다. 사람이 죽는 장면이 제대로 등장도 안 하고, 심지어는 그 흔한 키스 장면도 거의 없는데 이 영화는 그만큼 시각적으로 엄청난 충격을 안겨준 작품이 된 것이죠. 이 영화는 그 정도 만으로도 이미 대접받을 가치는 차고도 넘칩니다. 하지만, 리뷰인 만큼, 일단은 어느 정도 분석도 해야 하기는 하겠죠.

영화 특성상 이미 제목으로서 영화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대부분의 이야기를 밝히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나오는 제7의 봉인은 결국에는 요한계시록에서 나오는 세기말의 마지막을 이야기하는 부분이죠. 모든 것이 끝나고, 그 마지막을 이야기 하는 것이 바로 제7의 봉인입니다. 이 영화는 그 배경으로 영화가 시작을 합니다. 물론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세기말의 분위기라기 보다는, 우리가 역사로서 배운, 당시에 세상이 끝난다고 생각을 할 때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는 합니다.

이 영화는 당시의 시선으로 봐도 시대극입니다. 십자군이 나오고, 페스트가 돌던 중세 이야기를 영화에서 직접적으로 풀어 내고 있죠. 이 속의 인간군상은 우리가 흔히 교육속에서 배워 온 그 사람들의 모습과 별로 차이가 없습니다. 종교에 엄청나게 의존하고, 페스트로 인해서 그 종교가 점점 더 세를 넓혀가고 있으며, 심지어는 이 종교가 자신들의 이야기를 설파한다는 목적 하에, 그리고 자신들의 성스러운 무언가를 찾는다는 미명 하에 십자군을 일으킨 그 시대 말입니다.

이 시대에 관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종의 악몽같은 시대였다는 기억으로 주로 이야기를 할 겁니다. 사실 요즘 시선으로 봐서도 그렇게 정상적인 시대는 아니었죠. 종교가 득세를 해서 권력까지도 좌지우지한다던가, 아니면 목적을 위해서 사람들을 마구 희생시키는 그런 시대였으니 말입니다. 이 시대 속에서 사람들에게 죽음이 너무나도 가까이 다가온 시기가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예방 접종이라던가 위생관념이라던가 하는 부분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전염병이 더 무서울 수 밖에 없었기도 합니다.

이런 속에서 사람들은 살아갔습니다. 나름대로의 신념을 가지고 말이죠. 이 신념은 물론 지키기 어려운 것일 수도 있고, 심지어는 도저히 옳다고 보기 힘든 것들로 이뤄져 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나오는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그 신념으로 뭉친 사람은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의 신념을 완전히 잃어버린 한 사람이죠. 그 사람이 주인공이며, 그가 의심을 품는 것은 당시에 오직 옳다고 여겼던 어떤 부분입니다.

여기서 한가지 확실히 해야 할 것이 있는데, 이 옳다고 여겼던 부분에 관한 질문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라는 겁니다. 그 옳다고 여겼던 부분을 지금도 옳다고 무조건 밀어 붙이는 사람들이 있는 마당이니 말이죠. 게다가 이 상황은 절대 잊혀지기 힘든 형태로서도 자주 등장을 합니다. 이 영화는 바로 이 질문, 그 옳다고 여긴 것을 과연 진짜 제대로 확인을 할 수 있는가 하는 점으로 시작을 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 질문을 직접적으로 파고드는 영화는 아닙니다.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이 질문에 관한 여정은 이야기로서 진행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영화들은 보통 영화에서 주제로 내세운 것에 관해서 이야기로 굉장히 많이 치장을 하고, 관객들에게 끊임없이 상기를 시키면서, 동시에 관객들이 마지막에 그 의미를 제대로 알아갈 수 있게 하는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어 갑니다. 그게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이런 식으로 영화를 구성해 감으로 해서 나름대로의 정당성을 이끌어 간다는 것이죠.

하지만, 이 영화는 질문을 던지고는, 그 질문에 관해서 일부러 대답을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 영화의 천재성은 바로 여기서 발현이 됩니다. 이 영화는 오직 상황을 보여주고, 그 상황 속에서 관객들이 직접 흐름을 잡아 가는 방식으로 영화가 진행이 되는 것이죠. 영화가 흐르는 대로 관객들은 따라가게 되며, 그 흐름을 타는 순간부터 이 영화에서 던진 질문에 관한 여정에 직접적으로 동참을 하게 되는 겁니다. 이 상황에서도 여전히 스토리는 크게 중요하게 작용을 하는 부분은 아닙니다.

대신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것은 환상과 그 환상을 보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번뇌하는 주인공의 모습과 그 번뇌를 계속 지켜보는 주변 사람들의 표정으로 영화를 진행을 하고 있죠. 이 영화는 결국에는 이런 이유로 인해 인물들이 던지는 대사가 굉장히 중요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 속에 담긴 대사들은 그렇게 간단하게 볼 수 있는 것들이 아니죠. 하지만, 표면적으로만 보자면, 이 대사들은 굉장히 자연스럽기 그지없습니다.

이 대사가 나오는 상황은 그렇게 특별한 상황은 아닙니다. 이 상황이 일어나는 이유는 앞서서 설명한 시대상이라는 부분과, 그리고 개인들 각각의 문제가 벌어지는 데에서 발현이 되는 대사들이죠. 이 대사들은 표면적으로는 말 그대로 극의 상황을 굉장히 가볍게 받아들이게 할 수 있는 대사들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몇몇 장면에서는 너무나도 가벼운 나머지 오히려 웃음이 나올 정도죠. 그만큼 가벼운 대사들임에도 불구하고, 결코 간단하게 끝나는 법이 없다는 겁니다.

이 영화에서 대사들은 결국에는 각각의 장면에서 대단히 많은 의미들을 함축을 하기 시작합니다. 너무나도 쉽고 툭툭 던지는 대사들이기는 하지만, 인물들이 겪는 상황과 하나로 결합이 되면서 의미를 더 많이 가지기 시작하는 것이죠. 이 의미는 결국에는 영화의 결말로 가면서 하나의 완성된 표현으로 점점 더 자리를 잡아갑니다. 물론 이 마지막은 말 그대로 영상의 파괴력으로 이 모든 상황을 거의 정리 해 버리기는 하지만, 일단은 대사들의 구조가 없다면 이 결말까지 제대로 가지도 못할 수도 있었다는 겁니다.

흔히 상황에 따른 말이라는 게 있습니다. 이 영화가 이용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상황에 너무나도 잘 맞는 대사들입니다. 어딘가 시적인 부분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 상황에 안 어울린다는 말은 절대 할 수 없는 그런 대사들이 영화를 채우고 있는 것이죠. 이 영화의 미덕은 바로 이 대사들에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대사들만 가지고 영화를 이 정도로 거대한 느낌을 들게 하기는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이 영화처럼 스토리가 아주 크게 어떤 역할을 하지 못할 때는 더더욱 그렇죠.

여기서 발휘가 되는 것이 이 영화의 영상입니다. 그렇다고 이 영화의 영상이 엄청나기 휘황찬란하며, 오래전 영화의 미덕을 마구 칭송하고, 기절할 정도로 놀라운 효과를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 영화는 시각적인 부분에 있어서 너무나도 수수한 영상으로 영화를 채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수수함 속에 들어 있는 것은 그저 간단한 것은 아닙니다. 말 그대로 영화의 응축된 에너지를 그대로 가지고 있는 그런 영상이 영화 내내 감도는 겁니다.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영상은 기본적으로 배경이 있는, 아니면 거의 탁 트인 풍경입니다. 이런 풍경이 등장하지 않는 경우에는 굉장히 정적인 실내인 경우가 대다수죠. 이런 실내에서 이야기가 진행이 되고, 사람들이 서로 만나서 굉장히 소소한 대화들을 나누는 겁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화면은 그 소소한 대화들과 결합이 되는 상징적인 면들을 하나 이상 가지고 오는 화면들로 채워지고 있습니다. 군더더기라고는 하나도 없지만, 그 자리를 채우는 데에 있어서 간단하게 깔끔하다고만 할 수는 없는 화면들이 계속 되는 것이죠.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바로 이 화면입니다. 그 상징성은 대단히 뛰어납니다. 영화 속에서 작은 느낌이 계속 되고 있기는 하지만, 그 안으로 들어가는 깊이는 결코 쉽게 설명하기 힘든 그 무엇이 계속 감돌게 됩니다. 숲에서 단지 몇 사람이 있고, 단 두 사람이 화면 안에 있을 때도 있지만, 그 두 사람이 있는 곳을 보여주는 화면은 그들이 이 화면에서 존재하는 의미를 스토리로 설명하지 않고도 해석을 해 낼 수 있을 정도로 대단히 많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부분 전부 다 집어치우고서도, 굉장히 아름다운 풍경이나 충격적인 화면이 대단히 효과적으로 지속이 됩니다. 영화에서 오직 충격만 계속이 되면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쉽게 지치겠지만, 이 영화는 그렇게 지치지 않고도, 상당히 많은 양의 정보를 영상 하나에 남아서 관객들에게 대단히 효과적으로 전달을 하고 있는 것이죠. 이 화면은 스토리를 제대로 전달하는 것 보다는 관객에게 영화의 느낌 자체를 거의 그대로 전달하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을 묶는 것은 결국에는 캐릭터입니다. 이 영화에서 나오는 캐릭터들은 굉장히 독특한 느낌을 가지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굉장히 작은 배역이나, 굉장히 큰 비중을 가진 배역 마져도 캐릭터 자체의 특징을 너무나도 많이 가지고 있죠. 영화에서는 그 모든 것들을 너무나도 효과적으로 활용을 하고 있습니다. 조이는 맛이 필요하면 조이는 캐릭터가 나오고, 풀어주는 성향이 있을 때면 그 다른 캐릭터가 풀어주는 방식으로 말입니다.

다만 이 캐릭터들이 모두 매력이 있다는 말은 도저히 할 수 없습니다. 사실 몇몇 캐릭터들의 경우는 기괴하기는 엄청나게 기괴한데, 느낌 자체는 묘한 거부감이 드는 그런 캐릭터들이 영화 내내 등장을 하니 말입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항상 쓰는 말인데, 좋아하던 싫어하던,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캐릭터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각자 적재 적소에, 필요한 만큼 등장을 해서 각자 굉장히 강렬한 인상들을 남기고 가는 상황이니 말입니다.

이 정도 영화라면 정말 명불허전이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입니다. 이 정도로 작은 배경에서, 그렇게 화려하게 나오지 않으면서도 웬만한 화려하고 거대한 영화보다 더 깊고 더 강렬한 느낌을 주는 영화는 굉장히 드뭅니다. 말 그대로의 걸작이며, 이런 걸작은 그렇게 만나기 쉬운 작품이 아니죠. 영화의 가장 강렬한 매력을 너무나도 잘 끌어 내고 있는 그런 영화입니다. 심지어는 배우들도 이런 상황에 너무나도 잘 어울리고 있죠.

막스 폰 시도우는 솔직히 이런 배우일 거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별로 없습니다. 크리스토퍼 플러머와는 달리 너무 이 영화 저 영화에 나오는 경우인지라 영 아니다 싶었는데, 이 정도로 엄청나게 매력적인 배우일 거라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을 정도죠. 하지만, 이 영화에서 그가 보여주는 역할은 너무나도 강렬합니다. 심지어는 그가 두려워 하면서도 이기고 싶어 하는 그 무엇을 연기하는 사람과 너무나도 강하게 인간적인 면을 동시에 드러내기도 합니다.

이 외에도 너무나도 많은 배우들이 나오지만, 딱 한 사람 또 꼽자면 뱅 애커로의 모슴은 너무나도 충격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시각적으로 너무나도 충격적인 모습을 계속 유지하고 있죠. 이 모습은 절대로 잊기 힘들 정도이며, 심지어는 연기와 결합이 되어서 너무나도 조용히 등장을 하면서도 강렬하게 등장하는 그런 맛을 영화에서 계속 보여주고 있는 것이죠. 그리고 그 모습은 이 영화에서도 너무나도 잘 어울리기도 합니다.

이쯤에서 할 말은 하나입니다. 내리기 전에 보세요. 그냥 극장에 달려가셔서 영화를 보는 겁니다. 그냥 아무 걱정 마시고, 영화가 보여주는 흑백의 황홀경을 그냥 체험을 하시면 됩니다. 깊게 생각하지 마시고, 스토리를 따지지 마시고, 영화의 흐름에 그냥 자연스럽게 자신을 내맡기시면 됩니다. 이렇게만 하시면 영화가 보는 사람에게 너무나도 큰 보답을 할 수 있는 그런 대단한 작품입니다. 물론 탐구심으로 영화를 보면 이 영화 만큼 깊게 파고 들어가기도 힘들겠지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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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