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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5.31 잊혀진 꿈의 동굴 - 황홀경과 애매함의 경계
횡설수설 영화리뷰2013. 5. 31. 09:28

(참고로 모든 오프닝은 당시에 쓴 겁니다. 유의 부탁 드립니다.)

 

이 작품은 굉장히 고민이 많았던 작품입니다. 보게 될 지 아닐 지 고민이 많았던 작품이고, 솔지깋 좀 애매한 느낌이 있는 작품이기도 하죠. 아무래도 이 문제로 인해서 결국에는 넘어갈까 했는데, 못 넘어가고 결국 보게 되었네요. 게다가 이 작품, 악연이 점점 깊어지고 있습니다. 예매를 했다가 한 번 못 가고, 그 다음에서야 가느라 정말 환장해 버리는줄 알았거든요. 아무튼간에, 결국 봤으니 된거죠.

그럼 리뷰 시작합니다.



 





영화 이야기를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 과연 이 영화의 감독이 무엇을 만들고 싶어 하는가에 관해서 이야기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감독이 직접 이야기를 할 때도 있기는 합니다만, 이 영화에서 담는 이야기, 그리고 그걸 관객에게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에 관해서는 보는 관객마다 나름대로의 답안을 내릴 만한 부분들이 있죠. 하지만 이 답안에 관해서 애매하게 받아들이게 될 때가 있습니다. 제 입장에서는 극영화 만드는 감독이 급작스럽게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경우가 가장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극영화와 다큐멘터리는 결국에는 묘한 관계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극영화는 결국에는 진짜 있는 사실이건 아니건간에, 극적인 구조를 위해서 어느 정도는 변주를 하는 것 역시 가능하다는 이야기이니 말입니다. 하지만, 다큐멘터리의 경우는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다큐멘터리는 말 그대로 있는 사실만을 가지고 작품을 구성해야만 하며, 그 구성에 있어서 얼마나 매력적인지는 결국 영화에서 어떤 모습을 보게 되는지와 밀접한 관련이 되어 있으면서도, 그 한계는 명확하기 때문입니다. 말 그대로, 치장하는 데에 어느 정도 원판 불변의 법칙이 성립 한다는 이야기가 되죠.

물론 여기에는 몇 가지 함정이 있기는 합니다만, 대부분의 진정한 다큐멘터리는 그 함정을 밟는 대신 재미를 조금 잃는 정도로 끝나게 됩니다. 물론 몇몇 작품의 경우는 정말 예외적으로 움직이는 작품들도 있기는 하죠. 하지만, 그 작품을 만들었던 감독, 그러니까 마틴 스콜세지 같은 양반도 가끔 조지 해리슨 다큐멘터리같이 굉장히 길고 지루하게 작품을 구성하는 경우 역시 있다는 겁니다. 결국에는 역량과 촬영분이라는 두 가지가 모두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게 되기도 하는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베르너 헤어조크라는 이름은 굉장히 묘하게 다가오는 부분들이 일징량 이상 있습니다.

다른 무엇보다도, 제가 베르너 헤어조크 작품을 접한 지점은 바로 악질 경찰이라는 작품이란 것 때문에 이 작품이 대단히 묘하게 다가올 수 밖에 없었기도 합니다. 기본적으로 악질경찰은 잘 만든 스릴러 영화이기는 했습니다만, 영화 자체가 대단히 불친절하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다큐멘터리 특성상, 불친절하기 시작하면 정말 한도 끝도 없죠. 흥미를 끌어들이기는 극영화보다 훨씬 어려운데, 불친절하기까지 하면 더 묘할 수 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제가 해야 할 말은, 그래도 거장이라는 사람이 그 정도까지 하겠는가 하는 점입니다. 불행히도 베르너 헤어조크는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었다는 것이죠. 제 입장에서는 대단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영화가 탄생할 것이 분명하고, 이 것을 설명하는 데에는 스포일러가 난무하며, 결국에는 제가 뭔 소리를 하고 끝내는지도 모를 리뷰가 탄생하는 경우도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이 영화는 그런 막장에 가까운 지점까지 가버리는 영화는 아니더군요.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하게 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이 작품은 오직 3D로만 공개가 되었다는 점입니다. 국내에서 말이죠. 이 영화의 소재상, 평면의 벽화를 보여주고 그 설명을 하는 데에 굳이 왜 3D를 전택을 했는가 하는 지점은 굉장히 의심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중심이 되는 소재가 평면인데 굳이 입체로 봐야 하는가 하는 점 말입니다. 피카소의 그림은 결국 여러 면을 그리기는 했지만, 입체를 한 평면에 모아 놓은 것이라고 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이 경우는 그 반대라고 할 수 있겠죠.

문제는 결국 이겁니다. 과연 효용이 있는가 라는 점 말입니다. 다행히 이 작품은 일종의 여행 형식을 담았고, 그 현장을 같이 체험하는 방식으로 택했습니다. 그리고 그 체험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그 속에서 현재 영화를 만드는 한 예술가가 과거의 예술을 대하는 모습 역시 같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결국에는 일종의 체험성 이벤트에 가까운 작품이 탄생을 하게 된 것이죠. 여기에는 두 가지 관점이 있을 수 있습니다.

물론 저같이 영화가 평면으로, 그리고 더 세밀함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입체는 솔직히 달갑지 않은 지점입니다. 아직까지 평면도 제대로 통제 하지 못하고, 더 탐구를 해야 한다는 사람들에게는, 예술과 그림에 있어서, 그 색조와 아름다움, 그리고 그 평면의 탐구 역시 대단히 중요하게 다가온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그림의 평면적인 아름다움은, 굳이 체험적으로 바꾸지 않아도 얼마든지 관객에게 어필 할 수 있는 지점이라고 말을 할 수도 있고 말입니다.

그리고 영화는 평면에서도 얼마든지 더 좋은 체험을 줄 수 있기도 합니다. 입체에서 오는 깊이감은 찾아오지 못하겠지만, 평면에서 볼 수 있는 세밀함은 더 즐길 수 있는 힘이 되는 것이죠. 그리고 그 속에 무엇을 담을지 역시 아직까지도 탐구중인데, 굳이 평면을 설명으로서 입체적인 체험으로 바꿀 수 있는가 하는 점 역시 회의적으로 다가올 수 밖에 없고 말입니다. 그리고 이런 체험, 다큐멘터리적인 느낌은 평면에서 역시 얼마든지 매력적일 수 있고 말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그 체험이라는 테마는 굉장히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도 3D라는 부분을 굉장히 많이 사용한 흔적을 가지고 있고, 동시에 그 문제에 관해서 고민을 한 흔적 역시 굉장히 많이 들어가 있는 것이죠. 영화가 에너지에 관해서 말 할 때, 그리고 다큐멘터리적인 느낌을 말 할 때 이야기 하지 않는 굉장히 독특한 부분 말입니다. 사실 이는 현실보다는 일종의 부유하는 환상에 가까운 부분이기는 하죠.

웃기는건 다큐멘터리에서 부유하는 환상에 가까운 기운은 보통 우주 다큐멘터리가 쓴다는 겁니다. 영화가 얼마나 매력적으로 보여지는가에 관해서 어느 정도 쓰이는 부분은 있다는 것이죠. 그리고 이 작품은 그 문제에 관해서 굉장히 능수능란하게 움직입니다. 본다는 것에 관해 관객들이 받아들이는 것과 현실에 있는 것 그 사이의 무언가를 직접적으로 끄집어 내는 것이죠. 제 입장에서는 그것을 일종의 현실과 관객 사이에 있는 스크린에서 보여줄 수 있는 영화적 환상이라고 말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를 극영화에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현실을 전달하기 위해서 한 번 그 반대에 있는 부분들을 사용한다고 할 수 있는 겁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에 관해서 굉장히 잘 풀어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문제에 관해서 관개들이 스스로 답안을 내리게 만들죠. 적어도 자신이 본 것이 오직 현실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그림에 내포된 의미에 관해서 좀 더 빠져들게 만들고, 그리고 이 것을 보게 되는 과정을 체험하는 방식으로 하기 위해서 3D를 적극적으로 사용했다고 할 수 있는 겁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한 가지 더 애매한 것이 등장을 하죠.

다큐멘터리는 기본적으로 친절하게 마련입니다. 스토리가 있건 없건, 그 이야기가 어떤 현상을 보여주건 사실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건 결국에는 이야기를 보여주고, 스스로 스토리를 가지는 동시에 굉장히 설명적이라는 겁니다. 이 모든 것들이 현실을 편집을 해서 느끼게 하는 것들이라는 점에서 그 한계를 이야기 하는 것이죠. 하지만, 이 작품은 선결조건의 한 부분인 친절함이 감독의 성향에 맞게 대단히 작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는 감독의 주관적인 의지가 어느 정도 반영이 되는 모습이 보입니다. 이 것은 어찌 보면 나쁜 겁니다. 내 의견이 아니라고 얼마든지 말 할 수 있는 것이죠. 물론 이 작품에서는 받아들이는 과정에 어떤 억압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어떤 다큐멘터리처럼 한 단면에 관해서 깊게 파고드는 방식도 아니죠. 하지만, 이 작품에서 보여주는 것은 어떻게 하건 해셕할 수 있는 것에 관해서 넓게 보여주기는 하지만, 역으로 한 지점에 관해서 휙 던져주고 있다는 겁니다. 그 외 지점에 관해서는 알아서 생각하라는 식으로 나오면서 말입니다.

이는 굉장히 어려운 선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답안은 만약 극영화라면 필수 불가결한 조건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야기 구조상 마지막이 열린 부분이 될 수밖에 없는 극영화들도 있기는 하지만 그런 영화들 역시 대부분이 그 구조로 들어가는 부분에 관해서 결국 일정 이상의 해설을 붙이고 있다는 것이죠. 왜 그 결말이 나왔는가에 관한 감정적 당위성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이는 한계가 드러나는 부분들이라기보다는 불친절하다는 말이 더 어울릴 겁니다.

그래도 이 작품 역시 스스로 무엇을 설명을 해야 하는지에 관해서 일정 이상 보여주는 것들이 있다는 겁니다. 이 문제에 관해서 얼마나 매력적일 것인가에 관해서는 결국 해답상 어려울 수 있는 부분들 역시 있습니다. 영화가 얼마나 매력적인가에 관해서는 결국에 일반적인 구조를 지니지 않은 작품들에서 그 구조가 과연 관객들에게 얼마나 친절할 것인가에 관한 것과 연결이 되기도 하는데, 이 작품은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이는 결국 단점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극영화에서는 그 것이 결국 단서와 연결이 되는 한 관점이 되며, 관객들을 일종의 액자 밖으로 밀어 내고, 영화 전체를 빠져들지 않고 세밀하게 관찰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게 할 수도 있지만, 다큐멘터리같이 거의 반쯤 관객에게 떠먹여야 하는 작품에서는 아무리 좋게 받아들이려 해도 결국 작품의 불친절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는 겁니다. 그리고 이 문제에 고나해서 영화의 재미를 이야기 하는 것들이기도 하고 말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첨언을 하자면, 적어도 베르너 헤어조크가 영상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는 알았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특히나 3D가 동작하는 방식에 관해서 이 다큐멘터리는 정말 대단하다고 할 수 있는 작품이니 말입니다. 적어도 보는 동안 그 체험의 의미, 그리고 미술적인 황홀 역시 굉장히 잘 끌어냈다고 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이 문제는 나름대로 괜찮은 답안을 가지고있고, 즐거운 이야기라고 얼마든지 말 할 수 있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한 가지 확실히 해야 할 것은, 결국 결론인 동시에 일종의 경고인데, 전 이 작품을 직접적으로 추천하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영화 자체의 황홀경은 분명히 보는 동안은 유지됩니다. 그리고 그 에너지 역시 알 만 한 부분들로 연결이 되고 있기도 하고 말입니다. 하지만, 그 문제에 관해서 확실히 뭐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다른 무엇보다도, 이 작품에서 어떤 재미를 느끼기란 굉장히 어려운 일이 될 수 밖에 없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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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