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 영화리뷰2013. 5. 16. 10:07

(참고로 모든 오프닝은 당시에 쓴 겁니다. 유의 부탁 드립니다.)

 

 지금부터 읽으시는 이 글은, 저번에 올라왔던 1편의 후속적인 성격이 굉장히 강한 글입니다. 내용상 속편이라는 점도 있고, 제가 같은 날 관람하고, 같은 날 초안을 잡은 리뷰라는 점에서 더더욱 그렇죠. 이런 점에서 접근을 하시려면 1부의 리뷰가 어느 정도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시간을 두고 올리고 싶었는데, 그러기에는 지금 밀린 작품들이 너무 많아서, 그렇게 했다가는 말 그대로 시간에 쫓기는 정도를 넘어서게 될 것 같아서 말이죠.

1부 리뷰는 여기서 보시면 됩니다.

그럼 리뷰 시작합니다.

 

 

 

 

 

 

 

 

 바로 어제 페트레이버1편에 관한 이야기를 한 바 있습니다. 당시에 이야기를 하면서 의외로 철학적인 부분에 관해서 상당히 줄어들고, 흔히 말하는 흥행성과 작품성의 중간을 어느 정도 찾은 바 있다는 이야기를 했었죠. 당시에 로봇물의 어느 정도 형태를 벗어나서, 흔히 말하는 약간 수사물적인 특성을 띈 것이 돋보인다고 이야기를 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하지만, 이 작품만큼, 그 부분이 심하게 뒤집힌 경우도 드물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기본적으로 속편의 경우, 전편의 스타일을 어느 정도 안고가면서, 전편의 힘을 업고, 좀 더 거대한 스케일을 가지고 더 큰 일을 벌이는 것이 거의 일반적인 공식입니다. 이는 헐리우드뿐만이 아니라, 일본에서 이미 증명이 된 바 있죠. (드라마의 후계자로 출발한 춤추는 대수사선의 경우가 바로 이런 라인을 제대로 탄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은 바로 그런 면을 제대로 구사를 해서, 영화판 모두 비슷하게 좋은 평가를 받은 바 있죠.)

페트라이버 전편의 경우, 상당히 색다르게 튀는 이야기 였습니다. 어디까지나 현재의 오시이 마모루의 영화 형태를 생각을 해 보면 말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보자면 정말 신선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었죠. 당시의 작품에 관한 접근은 정말 재미있는 방식이었습니다. 흔히 생각하는 로봇물의 가장 다루지 않는 그런 부분을 정말 전면으로 부각을 시키면서 말입니다. 심지어는 이 부분에 관해서 어물쩡 넘어가는 대부분의 작품과는 대조적으로 말입니다.

기본적으로 이 작품에서 로봇에 관해서 가장 신선하게 접근을 한 것은, 로봇의 생산에 관한 부분이었습니다. 이 작품에서 레이버 생산에 관한 부분은 사실상, 우리가 생각하는 로봇 생산에 관해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방식이었죠. 어떠한 기술적인 부분이 아니라, 이것이 필요에 의해 어떻게 생산이 되는지, 그리고 이 생산으로 인해서 생기는 부수익에 관해서 본격적으로 사회와 관련되게 해석을 한 그런 신선한 방식을 영화에서 선을 보엿었습니다.

그리고 이 생산에 관해서 이 작품은 생각보다 정말 적절하게 영화에 연결을 하는 신기를 보여주기도 했죠. 기본적으로 페트레이버의 생산에서 로봇에 관해서 다른 작품에서 다루는 방식은 앞서 말했듯 전혀 보이지 않거나, 말 그대로 적진에서 파괴해야 할 시설 정도로만 보여주는 것이 다였습니다. 정말 심하면, 말 그대로 신기술이 마구 대량생산되는 그런 분위기로 몰고 가는 경우가 훨씬 많았죠.

하지만, 페트레이버에서는 이를 산업적인 측면에서 해석을 함으로 해서 로봇 애니메이션에서 전혀 다른 접근법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런 것을 절대 쉬운 일이 아니죠. 어찌 보면 아동물으로서의 로봇물이 아닌, 말 그대로 슬슬 사회적인 측면으로서 접근을 하는 것을 정말 제대로 보여준 케이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는 이 와중에 얽힌 이해관계의 일부분을 보여주기도 했죠.

그런 작품의 속편이 4년만에 나왔을 때, 그리고 그 감독이 여전히 오시이 마모루라는 생각을 해 보면 정말 기대가 되는 일이었을 겁니다. 이는 결국에는 전작의 어느 일정 부분 이상을 계승을 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이야기 이며, 여전히 그 스타일을 가져올 수 있는 그 어떤 부분이 정말 제대로 들어 왔다는 이야기이니 말입니다. 실제로 이런 부분이 일부분 정도는 2편에서 재생산에 됩니다.

기본적으로 이 작품에서 로봇에 관련되어 가장 많이 비쳐지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 로봇의 정비반과 개발하는 곳입니다. 이 작품에서는 레이버라는 장비의 수리와 개발이라는 부분에 있어서 움직이는 사람들을 오히려 정면으로 보여주고 있죠. 이는 결국에는 기존의 로봇물과는 전혀 다르게 작용하는 부분입니다. (보통 이런 장면은 그냥 뻥뻥 터지는 와중에 스쳐지나가거나, 최근작의 경우는 아예 스스로 수리가 된다는 매우 미묘한 방식으로 처리를 해 버린 케이스도 있죠.)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흔히 말하는 리얼리즘이라는 것이 결국에는 이런 것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로봇물에서의 리얼리즘은 오직 움직임과 변신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라는 가장 중요한 사례라고 할 수도 있죠. 사람이 탑승하여 뭔가 하는 로봇은 결국에는 사람의 손을 거쳐서 수리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것이면서, 동시에 손발이 달린 탈 것의 발전형이라는 그런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며,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인간형 로봇물의 로망의 전면에 도전장을 내미는 일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이 작품에서는 여전히 인간이 굉장히 중요한 테마로 등장을 하며, 로봇보다 등장하는 부분이 훨씬 많습니다. 그리고 인간에 의해 로봇이 움직이며, 그리고 그들이 타는 로봇은 결국에는 도구라는 것을 훨씬 전면적으로 보여줍니다. 작품에서 로봇이 파괴되어 다시금 수리를 하거나, 아니면 전투 뒤에 말 그대로 걸레짝이 된 모습을 거의 계속해서 보여주는 것으로 그 설명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이죠.

하지만, 이 작품은 이렇게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전편과는 좀 더 다른 면으로 작용을 하며, 쉽게 말해서 오시이 마모루의 최근 작품 경향, 혹은 진면목이라과 해석할 수 있는 그런 면으로 이어지는 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이 작품에서는 인간이 가장 전면으로 등장을 할 뿐만이 아니라, 그가 레이버와 관련이 되어 있기는 하지만, 이 작품에서 레이버는 오히려 뒤로 밀리며, 동시에 그 수사가 어떻게 진행되는가에 관해서 작품은 굉장히 심도있게 진행이 됩니다. 이로서 레이버라는 기계는 뒤로 밀리며, 동시에 작품에서 진정으로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부분은 전면으로 등장하는 그런 계기가 되는 것이죠.

기본적으로 이 작품에서 가장 전면으로 부각이 되는 것은, 의외로 전쟁이라는 부분입니아. 이 전쟁에 관해서 한 개인이, 과연 어떤 일을 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죠. 최근의 오시이 마모루의 방식인 무엇이 진정한 인간인가 하는 점과는 사뭇 다른, 하지만, 여전히 계속해서 어느 정도는 보여지는 그런 주제를 작품에서 본격적으로 부각을 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 면을 풀어가는 모습은 여타 로봇물과는 전혀 다릅니다.

보통 전쟁에 관해 이야기를 할 때, 로봇이 등장하여, 다른 로봇과 전투를 벌이고, 말 그대로 작살을 내는 모습이 주로 작품을 채우고 있는 것이 대다수입니다. 이는 건담때에도 그랬고, 이후 작품들도 그렇고, 최근작들도 마찬가지죠. 이는 상품을 판매하는 부분에서도 연관이 되어 있으며, 심지어는 작품의 주제를 상당히 편하게 전달하는 역할도 합니다. 작품에서 전쟁이 얼마나 파괴적인지에 관해서 이 부분을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데에는 무지하게 효과적이라고 할 수 있죠. 로봇이 산산조각이 나서, 그 안에 타고 있는 사람은 교신이 끊기고, 그 자리에 가보면 잔해만 둥둥 떠 있으면 되니 말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보여주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인간입니다. 이 작품에서 총질을 하면 로봇이 반응해서 역으로 치고 가는 것이 아니라, 그 뒤에서 우왕좌왕하는 인간의 모습이 좀 더 전면으로 부각이 되는 것이죠. 이는 전편의 모습과도 상당히 대조가 되는 모습입니다. 전편에서는 어느 정도 로봇과 관계가 되지만, 이 작품에서는 그런 부분에서 로봇이 거의 빠지거든요. 심지어는 화면에서 로봇 이름만 말 하고, 로봇을 전면에 보여주지 않는 그런 무지막지한 짓도 서슴지 않습니다.

이런 방식에서 이 작품이 선택한 것은 전편에 이어서 좀 더 수사물적인 모습입니다. 게다가 이 작품에서는 좀 더 본격젹으로 수사 미스터리적인 측면을 부각시키고 있죠. 이 와중에 애니메이션적인 측면을 더 심하게 덜어내는 측면도 많이 보이고 있고 말입니다. 바로 이 부분에 관해서 좀 더 이야기를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기본적으로 수사물이라는 측면의 부각이라는 것은 사실 오시이 마모루의 작품을 굉장히 오래 봐 오신 분들이라면, 특히 요즘의 오시이 마모루 작품의 팬들이라면 그렇게 낮선 모습은 아닙니다. 오히려 수사물의 형태를 가장해서 거대한 철학적 미국을 구사하는 경우에 더더욱 익숙하신 분들도 많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이 당시를 생각해 보면, 특히나 전편을 생각을 해 보면 이런 면은 상당히 신선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이 작품에서 경찰이라는 측면을 가장 심하게 내세우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면의 전면적인 표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전보다 경찰 회의의 모습은 전편보다 노출이 훨씬 적기는 하지만, 이 작품에서 언론의 방식과 수사의 충돌, 그리고 경찰과 다른 정부 기관과의 관계에 관해서 암시하는 장면은 전편보다 훨씬 많습니다. 오히려 좀 더 현실적이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죠. 이는 여타 로봇물에서는 절대로 다루지 않는 모습입니다.

게다가 이런 면에서 접근이 좀 더 심화됨으로 해서, 이 작품에서는 역으로 화면의 전면에서 전편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사람들보다, 수사기관에서 좀 더 많은 책임을 지지만, 여전히 헌장에서 뛰는 인물들을 전면에 부각을 합니다. 이런 면으로 해서 이들이 바깥과 안에서 겪는 고충들을 좀 더 전면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죠. 이는 절대 로봇물의 매력이라고 할 수 없는 부분들입니다.

그런데, 이 면에서 상당히 특이하게 등장하는 것은 이들이 몸담고 있는 가장 가까운 부서의 관계입니다. 이들은 분명 경찰의 로고를 달고는 있지만, 경찰과는 가끔 충돌하는 그런 관계이기도 합니다. 상당히 애매한 부분인데, 그들이 흔히 생각하는 그런 경찰과는 다른, 좀 더 정의를 위한 기관이라는 이상한 명목을 달기는 하지만, 그래도 애니메이션적인 특징을 살리기 위한 기관임을 좀 더 보여주고 있죠.

이는 굉장히 이 작품에서 미묘한 균형감을 자아냅니다. 전편의 리뷰에서도 이야기를 했듯이, 전편에서는 로봇물이라는 측면과 애니메이션적인 상상력으로 무장을 해서, 실사영화와 균형감을 잡아 내고 있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그 부분들이 좀 더 실사에 가까워져 있죠. 하지만, 대신에, 실사와는 다르게 애니메이션적인 부분에서 이 부분을 좀 더 밀어 줬다는 겁니다. 이는 애니메이션적인 상상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죠. (물론 여전히 로봇이 어느 정도 고수가 된다는 점도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균형 덕에, 실사와는 어느 정도 차별이 되지만, 이야기적인 무게로는 전혀 뒤지지 않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의 무게는 실사보다도 더 많은 무게를 지닐 수도 있는 무기가 되었죠. 결국에는 작품에서 관객이 생각을 할 수 있는 출구를 마련하고, 동시에 작품에 감독의 생각을 좀 더 많이 담을 수 있는 일종의 그릇을 마련을 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형태는 쉽게 말해서, 오시이 마모루적인 특징이 좀 더 발현이 되게 만드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철학적인 미로를 구성하는 그 오시이 마모루의 최근의 작품 특성이라는 것 말입니다. (이 부분에서 미리 말씀 드리는데, 전 오시이 마모루의 ‘애니메이션’파트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지 그의 ‘실사 영화’ 부분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의 실사 영화쪽은 전혀 다른 이야기가 진행이 되죠.)

기본적인 부분에서 이 작품에서의 가장 큰 오시이 마모루 답지 않은 특징이라면, 이 작품에서는 이야기가 현학적인 부분으로 너무 깊게 들어가지 않는다는 겁니다. 오히려 이는 추리적인 부분으로 연결이 되며, 이는 두뇌싸움으로 연결이 되는 부분이 상당히 강합니다. 앞서 말한 부분이, 흔히 말하는 수사물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단서를 모으는 쪽으로 연결이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죠.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그의 특징이 점점 많이 보이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가장 단적인 예로는 이 작품에서는 약간 기묘하게 생긴 선인인지 악인인지 알 수 없는 누군가의 독백이 상영시간에서 정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죠.

이는 상당히 기묘한 부분인데, 오시이 마모루 작품을 좀 보신 분들이라면 인정할만한 특징이기도 합니다. 기본적으로 이 선인인지, 악인인지 알 수 없는 자의 독백은 (결국 악인으로 밝혀지는 경우가 상당수이기는 합니다만) 작품에서 상당한 파괴력이자,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으로 작용을 하게 됩니다. 이 질문의 해답을 찾아 나가는 것이 바로 관객과 이 작품의 주인공들의 임무이기도 하죠.

이는 결국에는 작품의 가장 중용한 특징이 되는 동시에, 이야기를 구성하는 데에 있어서 이것이 오시이 마모루다 하는 측면을 여전히 가장 많이 보여주는 부분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부분만 가지고는 오직 오시이 마모루에 관한 부분이라고 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항상 이야기 하지만, 애니메이션은 영상의 구성을 결국 있는 것을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닌 만큼, 정말 많은 상상력이 작용을 하는 것이죠.

우리가 오시이 마모루 작품을 이야기 할 때에, 잘 이야기 하지 않는 것이 세부 디테일에 관한 부분입니다. 이 부분에 관해서 정말 지독한 감독이 등장을 한 관계고 있고 (신카이 마코토 작품을 몇 편 접한 분들은 이 문제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아실 겁니다.) 그가 최근에 컴퓨터 기술을 본격적으로 받아들임으로 해서 이 부분이 그렇게 신기한 것들이 아님을 이미들 잘 알기 때문입니다. (가장 최근의 예로 가디언의 전설의 부엉이 털 구현력이 있습니다.)

하지만 손으로 그리던 시절에서, 현실감과 디테일이라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고 할 수있습니다. 이 부분에 관해서 오시이 마모루도 상당히 대담하게 나간 것을 보여주고 있죠. 기본적으로 배경에 관한 디테일은 이미 많은 감독들이 과거부터 상당히 밀어 붙인 것을 아실 겁니다만, 인물들의 움직임과 생김세에 관해서 이렇게 밀어붙이기 시작한 것도 드물죠.

이 작품의 디테일적인, 다시 말해, 사실적인 부분으로의 향함은 상당히 괄목할만 합니다. 전편이 고작 4년전의 작품인데, 애니메이션적인 인물 생김새와 인물들의 행동을 생각해 본다면, 이 2편은 굉장히 현실적이 된 것이죠. 기본적으로 인물들의 성격은 거의 그대로라고 할 수 있습니다만, 이 부분을 현실에 맞게 다시금 해석을 해 버린 부분도 상당수 작품에서 보여지고 있습니다.

이는 결국에는 오시이 마모루의 현실과 애니메이션의 경계의 실험에 관한 부분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부분 덕분에 애니메이션의 스타일도 최근에 들어서는 현실의 방식으로 가는 경우가 많죠. 역으로 가는 경우도 많고 말입니다. (오시이 마모루의 작품인 공각기동대에 영향을 받았다고 이미 밝힌 워쇼스키 형제가 스피드 레이서라는 작품에서 벌인 일을 생각을 해 보면 이해가 쉬울 겁니다.)

런 스타일의 실험은 말 그대로 이런 작품의 트레이드마크가 되기도 했습니다만, 오시이 마모루 역시 이런 부분에서 이미 대단히 많은 시도를 한 것이죠. 결국에능 이런 특이한, 오시이 마모루의 필모에서 보자면 과도기의 후반적인 작품이 등장을 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가볍지는 않는, 하지만 전편의 특징을 어느 정도 계승을 함으로 해서 그 경계를 실험하는 그런 작품 말입니다. 이는 굉장히 가치 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리고 이런 것을 전면적으로 극장에서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 또 대단한 일입니다. 이런 것은 일종의 도전이고, 실험이니 말입니다. 스토리적으로서도 그렇고, 작품의 스타일적인 면에서도 그렇고 말입니다.

항상 하는 이야기이지만, 이런 작품이 영화제에서 상영이 되는 것은 굉장히 좋은 일입니다. 애니메이션이 어떻고 애들 보는 것이라는 편견이고 간에, 이런 것이 본래 목적에 맞게 극장에서 상영이 되는 것은 정말 주목할만한 일입니다. 쉽게 말해서 극장에서 꼭 보지 않으면 정말 제대로 후회할 상황이라는 것이죠. DVD나 블루레이라는 메체로 어느 정도 큰 화면에서 볼 수 있기는 하지만, 진짜 극장은 아니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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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피니
횡설수설 영화리뷰2013. 5. 16. 10:05

(참고로 모든 오프닝은 당시에 쓴 겁니다. 유의 부탁 드립니다.)

 

정말 오랜만에 애니메이션이 연속으로 리뷰로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이번주가 사실 좀 지독하죠. 생각해 보면 11월이 전반적으로 좀 많이 지독합니다. 가족영화제에, 부천에, 이번에는 메가박스도 겹쳐 있으니 큰일 난 게죠;;; 게다가 지금 상황으로 봐서는 조만간 상암에도 한 번 다녀 와야 할 것 같습니다;;; 겹치는 몇 편의 영화를 그 쪽으로 빼 버렸거든요. 아무튼간에, 한동안은 정말 리뷰 퍼레이드가 될 것 같습니다.

그럼 리뷰 시작하죠.



 





항상 이야기 하는 바 이지만, 제가 애니메이션을 좋아하게 된 것은 그렇게 오래된 것이 아닙니다. 게다가 애니메이션을 좋아하게 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곧 미국 드라마쪽에 빠지는 바람에 흔히 말하는 오덕의 길로 가는 스타일은 아니었습니다. 물론 그 와중에도 몇몇 감독이라던가, 그리고 몇몇 유명한 애니메이션에 관해 들어보게 된 바는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미야자키 하야오고, 나머지 하나는 역시나 오시이 마모루였습니다.

오시이 마모루가 갑작스럽게 다가온 것은 사실 굉장히 간단한 이유였습니다. 일본 문호가 개방이 되고, 그 이후에 갑자기 극장용 애니메이션이 마구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 계기였죠. 당시 공식적으로 일본 문화가 개방됨으로 해서 개봉하지 못 하고, 그동안 B자로만 돌던 애니가 갑작스러베 공개가 되었습니다. 그 와중에 끼어 있던 것이 그 유명한 공각기동대였습니다. 전 당시에 이 작품이 왜 그렇게 유명한지 몰랐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제가 이 작품을 본격적으로 보게 된 것은 오히려 속편인 이노센스 덕분이었죠. 그 이후에 겨우 공각기동대라는 작품을 알게 되었고 말입니다. 그렇게 되어서 오시이 마모루라는 이름을 알게 되었기도 하고 말입니다.

하지만, 이에 관해서 고백을 할 것이 하나 있는데, 제가 그 이전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관계로, 오직 공각기동대 이후의 작품 세계만을 알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런 이유로 인해서 오히려 공각 이전의 작품이던가, 공각기동대와 관계가 없는 작품은 전혀 보지 않게 되었던 것도 있습니다. 오히려 이후에 스튜디오 I.G라는 이름을 달고 나온 작품은 열심히 보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공각기동대 외에도 그가 작품을 분명히 란 적이 있을 거라는 겁니다. 고백하자면, 그 사실을 간과하고 접근을 한 것이죠. 그렇게 함으로 해서 이 작품에 관해서 약간은 다른 관접으로 처음에는 접근하게 되었던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한 번 천천히 생각을 해 보도록 하죠. 그러니까, 그게 공각기동대 이후의 오시이 마모루의 작품 세계입니다. 대부분은 엄청난 분량의 철학이 들어가고, 영화가 매우 현학적으로 접근을 하기 시작하는 시기입니다. (물론 그가 만든 실사영화쪽은 이야기를 하지 않도록 하겠숩니다. 애니메이션과는 조금 다른 방식의 접근을 하니 말입니다.) 이런 관점은 기본적으로 그가 어떤 작품을 만들고, 그리고 그가 만드는 작품에 관해서 생각하는 일종의 편견으로 작용할 수도 있는 점입니다.

바로 그렇게 접근을 하면서, 전 이 작품에 관해서 처음에는 완전히 다르게 생각을 했었던 것을 미리 고백을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본 것이라고는 공각기동대가 전부요, 이후에 본 작품은 공각기동대의 본격적인 속편인 이노센스였고, TV 시리즈인 공각기동대 S.A.C를 봤고, 거기에 얼마 전에는 스카이 크롤러를 봤으니 말입니다. 이 작품들에 관한 공통점이 하나 있는데, 바로 그가 엄청난 분량의 철학을 작품 속에 내포를 했다는 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흔히 영화에서 작가주의라는 말이 있습니다. 영화 자체를 스스로 작품성과 예술성을 위해서 영화에서 상업적인 면을 기꺼이 포기하게 되는 면이 작가주의인 면이 많습니다. (물론 가끔 아닌 경우도 발생을 합니다만, 그냥 보편적인 접근이라고 이해를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보통 초짜감독들이 상업성과 작가주의의 균형을 못 맞추고 영화가 무지하게 지루하게 되는 면들이 있습니다.

보통 이 지루한 면이 발생하는 것은, 분명히 감독이 원하는 것을 영화에서 뵤편을 하고 있는데, 영화의 관객들에게는 그런 면이 제대로 전달이 안 된다는 점입니다. 이 전달의 안 된다는 것은 결국에는 작품을 보는 관객들이 이해를 못 하고, 결국에는 여화에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면서, 영화가 계속해서 질하게 느끼게 될 거라는 점이죠. 이 점 덕분에 영화가 지루하게 되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하지만, 이제 경지가 어느 정도 들면, 감독은 영화에서 작가주의를 발휘하면서, 그것을 어떻게 영화를 보는 관객에게 전달을 할 것인가에 관해서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정말 대단한 감독이라는 말이 나오게 되는 것이죠. (물론 그 경계를 실험하는 감독들도 몇 있습니다. 작품성과 흥행성의 저울질에서 성공을 하는 경우인데, 이 경우는 정말 드뭅니다. 이 경우에 성공한 사람이 제 기억에는 최근에는 크리스토퍼 놀란 정도죠.)

아무튼간에, 이 영화를 만든 오시이 마모루는 바로 그 면에 관해서 이제는 통달을 한 사람입니다. 사실, 그의 작품을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이 작품이 굉장히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 면도 분명히 존재 합니다. 사실 그만큼 어렵기도 하고 말입니다. 하지만, 그의 영하 속 철학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그의 특제 브랜드라고 할 수 있는 수준이기도 합니다. 작품을 조금만 아는 사람이면, 그가 영화에서 어떤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지, 그리고 그 것에 관해 얼마나 생각을 많이 해야 하는지 에 관해서 알 수 있는 상황이 되는 겁니다. (그 와중에 해석에 관한 차이를 어떻게 줘야 하는가에 관한 논쟁도 정말 볼만하죠.)

하지만, 그도 그 이전의 시절이 있었습니다. 말 그대로 작품성에 관해 미친 듯이 파헤치기 전, 그러니까 좀 심하게 말 하자면, 그도 밥을 먹고 살기 위해서 작품성과 흥행성의 경계에서 어느 정도 연구를 해야 할 상황이 분명히 있었다는 점입니다. 제가 판단하기로는 지금 리뷰 하고 있는 영화인 기동경찰 패트레이버가 바로 이 경게에 서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부터 그 이유를 자세히 설명을 하기로 하죠.

기본적으로 오시이 마모루의 작품에서 애니메이션의 느낌은 대단히 정적이고, 인물들의 표현이 대단히 현실적입니다. 제가 말하는 현실적이라는 것은 애니메이션에서 말하는 현실감이 아닌, 말 그대로 영화 속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그런 현실감을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현실감 덕분에, 캐릭터에서 우리가 더더욱 묘한 매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더 재미있는 것은, 그러한 캐릭터들의 기본 설정에서는 오히려 애니메이션적인 면이 가미가 된다는 점입니다. 이 현실과 애니메이션의 경게에서 작품의 형상은 더더욱 묘해집니다. 그리고 이러한 묘한 캐릭터 형성 속에서 작품이 형태도 이런 두 부분의 충돌을 볼 수 있죠.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작품을 보여주고 있는 카메라의 역할입니다. 기본적으로 애니메이션에서 쓰는 그런 뭔가 비현실적인 구도가 아닌, 영화에서 자주 쓰는, 그것도 드라마쪽에 강한 영화에서 자주 쓰는 그런 구도로 작품들이 만들어 져 잇습니다. 분명히 애니메이션이지만, 작품에서는 애니메이션의 스타일에서 탈피를 하고 있는 것이죠.

사실, 기동경찰 패트레이버 극장판에서 이런 구도가 상당히 많이 사용이 됩니다. 기본적으로 이 작품에서의 영상 구도는 우리가 생각하는 스릴러 영화의 구도와 거의 비슷합니다. 분명 작품 속에서 다루고 있는 상상력의 산물은 대부분 애니메이션의 그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것을 보여주고 있는 영상은 여전히 영화의 그것과 매우 비슷한 것이죠. 이 영화에서는 이미 그 기미가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오직 그런 면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애니메이션에서는 흔히 쓰는 과장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최근의 디지털 애니가 보여줄 수 있는 인물 표정의 경지에 다다르기 전, 인물들의 감정을 오직 성우들의 능력과 인물들의 행동에서 보여줘야만 하는 시절이 있었습니다. 이 영화는 바로 그 부분을 여전히 사용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상당히 묘한 일이죠.

게다가 이 작품에서는 의외로 오시이 마모루 특유의 깊은 철학적 사유가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것도 아닙니다. (제 주변에서 좀 상하게 말씀하시는 분들은, 이것이 개똥철학에 중2병 환자 중증에서만 볼 수 있는 수준이라고 하지만, 글쎄요, 그 친구들이 죽음에 관한 깊은 탐구를 보여줄 수 없는 수준이라 말이죠;;;) 제가 기억하는 오시이 마모루의 작품의 대다수는 바로 이 깊은 철학적인 해석을 보여주고 있죠. 게다가 이 부분의 지독한 점은, 작품에 관해서 관객들이 또 다시 한 번 해석을 할 수 있는 여지를 또 남기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오히려 그런 부분이 상당히 줄어들어 있습니다. 이는 상당히 기묘한 것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분명 오시이 마모루의 어떤 테마를 예상하고 갔더니만, 의외로 흔히 말하는 재미를 추구하는 그런 물건들을 보고 왔으니 말입니다. 그것이 나쁘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의외라는 것이죠. 제가 아는 세계에서 한 발 더 나아간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그런데, 이 작품은 또 나름대로 특징이 있습니다. 흔히 말하는 상업 애니메이션과는 또 다른 특징 말입니다.

기본적으로 이 작품은 로봇물의 성격이 상당히 강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들이 타고다니는 것을 로봇이고, 로봇에 의해 벌어질 수 있는 심각한 사태에 대비해서 로봇으로 대항을 한다는 구조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는 대부분의 로봇물에서 이용이 되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건담을 로봇으로 벌어지는 전쟁이고, 그렌라간의 경우는 로봇으로 이뤄지는 생존싸움이라고 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이런 것들은 기본적으로 재미를 위해서, 그리고 흔히 말하는 2차적인 시장(고상하게 말 해서 그렇지, 말 그대로 완구 시장입니다.)을 노리고 작품을 만드는 것이 상당수입니다. 이런 면은 사실 그렇게 나쁜 것은 아닙니다. 결국에는 이런 것은 어느 정도 돈이 벌려야 하는 것이고, 그래야 다른 것에 도전할 수 있는 기반이 되기도 하니 말입니다. 이런 면에서 보자면 이런 것은 사실 나쁜 것이 아닌 겁니다.

이야기가 살짝 빗나갔는데, 아무튼 이 작품은 그런 로봇물의 기반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의 또 다른 특별한 점은, 이런 기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이런 기반을 가진 여타 로봇물들과는 다르게 오직 액션에만 치중하거나, 아니면 좀 더 거국적인 면모에 치중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작품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흔히 말하는 인간의 범죄라는 면모에 관해서 의외로 충실하게 밀고 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제가 이미 앞서 이야기를 한 바 있습니다만, 이 작품은 기본적으로 스릴러물의 화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건에 관해 추적을 하고, 사건에 관해 어떤 해결점을 가지고 있으며, 동시에 이런 면에 관해서 해결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죠. 아이작 아시모프가 로봇이라는 작품의 머리말에서 이야기를 하듯, 작품은 분명 SF이지만, 추리소설적인 면모를 끌어들여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조금 다르게 해석을 하면 바로 이런 면이 나올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 말입니다.

이 작품은 그만큼 인간에 관해서 열심히 설명을 합니다. 게다가 로봇의 활동에 관해서 이 작품은 그다지 많이 보여주려고 하는 편도 아닙니다. 심지어는 로봇이 등장하는 장면에서 그 안에 타고 있는 인간이 직접 나오는 경우도 많죠. (악취미적이게도, 이 작품의 구형 로봇은 아예 인간이 겉으로 노출되어 있는 구조로 나와서, 로봇을 클로즈업하면, 인간이 보이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이 작품의 매력은 바로 그것에 있습니다. 흔히 말하느 로봇이 등장하고, 로봇에 관한 액션이 나오며, 그리고 그 액션을 펼치는 것도 로봇이 많이 나오지만, 이 작품의 사건과 그리고 그 해결이라는 부분에서 인간이라는 부분이 등장을 하고, 그리고 그 근원에 한 인간의 무시무시한 계획이 잠들어 있다는 점도 그런 면을 상징을 합니다. 이 작품은 그 면을 매우 유려하게 표현을 해 냅니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 그 면을 이용할때에, 극장판 애니메이션일는 것을 굉장히 잘 이용을 합니다.

기본적으로 TV 애니메이션이라는 부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떻게 기승전결을 이루어야 할 것인가입니다. 결국에는 이야기를 하는 데에 있어서 시간제한에 시달리게 되고, 이 시간제한을 해결하기 위해서 스토리는 24분이라는 시간 이내에 잘 짜여 들어가야 하고, 그리고 그 안에서 어느 정도 소기의 결말을 가져가야 하는 구조입니다. 실제로 일본 애니는 이 면에 관해서 거의 신의 경지라고 할 수 있죠.

하지만, 극장판 애니메이션의 흐름은 다릅니다. 극장판 애니에서는 결국에는 영화의 흐름 답게, 어느 정도 시간적인 면에서 상당히 세밀하게 사건을 그리는 것이 가능하며, 동시에 이야기를 좀 더 유려하게 끌고 가는 것이 가능해 집니다. 이런 것들이 결국에는 작품을 일반 TV애니와 극장판 애니를 다르게 하는 점이죠. 하지만, 이 면에 관해서 TV판의 연장으로 나오는 대부분의 애니가 잘 이용을 하지 못합니다. 한 사건을 길게 늘림으로 해서, 이야기의 세부사항만을 채워 넣는 방식으로 가는데, 극장판 애니에서 오직 이것만이 다는 아니라는 겁니다.

하지만, 기동경찰 패트레이버는 바로 이 면을 굉장히 잘 이해를 했고, 동시에 영화적인 흐름이 어떤 것인지에 관해서 영화가 굉장히 잘 보여주는 케이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면에서 극장판이라는 것이 어떻게 구성이 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스토리가 길어지면서 그 속에 들어가 있는 세부 사항의 연결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에 관해서도 굉장히 잘 표현이 되어 있는 그런 케이스라고 할 수 있는 것이죠.

게다가 이 작품에서는 의외로 철학적인 이야기를 스토리와 굉장히 유기적으로 연결시키는 시험도 해 내고 있습니다. 사실, 최근작이 과도한 철학으로 인해서 오히려 작품을 사색을 하게 만든다면, 이 작품은 그런 면과는 다르게 철학의 강도는 좀 줄어들지만, 오히려 관객들이 작품을 즐기면서, 자연스럽게 그 철학을 생각하게 하는, 그리고 생각하기 싫은 사람들도 적어도 그 인과관계를 따지게 할 수 있는 그런 형태를 지니고 있습니다.

사실 이런 면들에 관해서 정말 요즘에 잘 나온 말이 있는데, 작품성과 흥행성의 균형을 굉장히 잘 맞춘 그런 케이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제가 1989년에 나온 작품이 당시에 어떻게 사람들에게 비쳐져서, 그리고 이 작품이 얼마나 관객들에게 어필을 하고, 결론적으로 얼마나 많은 돈을 벌어들였는지는 솔직히 알아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분명한건 적어도 현대인들에게는 충분히 그렇게 비친다는 것이죠.

작품성에 관한 결론을 내리자면, 사실 이미 많은 분들이 이미 내린 결론이지만, 상당히 잘 만든 작품입니다. 애니메이션이지만, 애니메이션이면서도 극장에 맞는 스토리 방식과 스케일, 그리고 흔히 말하는 실사 영화의 특성을 적극적으로 수용을 하면서 동시에 애니메이션의 느낌이라는 것을 적당히 사용을 한 것에 관해서 이미 멋진 작품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애니메이션이라고 하지만, 아이들이 즐기기에는 좀 부담이 큰 작품이라고 하는 면에서 이미 좀 문제라고 하시는 분들이 분명이 있을거라고 생각을 합니다만, 브래드 버드라는 감독이 말 한 바 있듯, 애니메이션은 장르가 아닙니다. 동시에, 오직 아동을 위한 장르는 더더욱 아닙니다. 애니메이션은 영상을 어떤 방식으로 표현을 했는가에 관한 특성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이 작품은 애니메이션이라는 특성 내에서 SF스릴러 라는 장르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그런 경지에 올라와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 뭐, 그렇습니다. 이 작품 역시 본연의 목적인 큰 스크린으로의 상영은 앞으로 몇 번 더 남았는지 도저히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이미 한 번 공개가 된지 벌써 20년이 다 되어가는 작품이죠. 하지만 빠른 시일 내로는 상당히 힘든 작품임에는 분명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쯤에서는 영화의 가치가 어쩌고 하기 보다는, 그냥 빨리 달려가셔서, 표를 끊어서 이 작품을 본래 목적의 큰 스크린으로 한 번 보는 것이 더 정답일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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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