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 영화리뷰2013. 5. 30. 09:54

(참고로 모든 오프닝은 당시에 쓴 겁니다. 유의 부탁 드립니다.)

 

심야 상영이 한 번 지나가고 나면, 작품의 숫자가 마구 올라갑니다. 보통은 하루 밤에 세 편이 올라가는 상황이 주로 벌어지죠. 다만 이번에는 그렇게까지는 벌어지지 않고 두 편에서 마무리가 되는 선이 되었습니다. 사실 이번 부천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에서 보고 싶은 작품들이 더 있기는 했습니다만, 도저히 보러 갈 시간을 맞출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진지라, 이번에 그냥 샤이닝 관련 심야 상영만 다녀오고 말았죠.

그럼 리뷰 시작합니다.



 





샤이닝에 대한 해석은 분분합니다. 얼마 전 올린 관객과의 대화 전문 역시 이런 해석적인 부분에 관해서 대단히 열심히 이야기를 했었던 내용을 졸면서 옮겼던 것이죠. 사실 개인적으로는 영화에 관해서 어떤 사회적이나, 심리적 분석으로 영화를 본다기 보다는, 그 영화가 과연 내게 어떤 재미를 안겨줄 수 있는가에 관해서 좀 더 기대를 하고 있는 측면이 더 강하기는 합니다. 실제로 그렇기 때문에 전 기대점에 관해서 오직 재미가 있을 것인가에 관해서 거는 경우가 많고 말입니다.

샤이닝은 제게 그런 재미를 안겨준 영화였습니다.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영화였고, 쉽게 소비가 되어서 그냥 스러질 만한 영화가 절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만든 작품이었죠. (전 이 영화가 트위스터에서 잠깐 나오길래 그때 처음으로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분석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도 많고, 그 속에서 어떤 분석을 가지고 가는가에 관해서 서로 논쟁을 벌이는 경우 역시 대단히 많았습니다. 이 한 영화에 관해서 세월이 갈수록 더 많은 분석이 따라 붙는 이유도 이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는 바로 그 지점을 파고드는 사람들에 관해서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그 집요함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죠. 그리고 이 현상에 고나해서 직접적으로 이야기를 하면서, 이 현상이 벌어지는 샤이닝이 얼마나 대단한 영화인지에 관해서 역시 이야기를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매력은 바로 이 지점에서 발생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 문제가 관객에게 먹혀 들 것인지에 관해서는 나중에 이야기 하겠습니다.

보통 영화가 흥행을 하게 되면 어떤 사회적인 현상을 불러오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만큼 영화는 시각적, 청각적인 쾌감을 안겨주는 힘이 강한 예술 스타일이죠. 게다가 대중적인 면 역시 대단히 강하게 나오기도 하고 말입니다. 영화는 그 재미에 관해서 표현을 하는 것을 업으로 삼기도 하지만, 그 속에는 영화적인 의도 역시 무지하게 많이 함유 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의도를 알아 내려는 사람들 역시 대단히 많기도 하고 말이죠.

스탠리 큐브릭은 이런 지점에서 대단히 좋은 재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강박에 가까운 완벽주의적인 특성은 이런 지점에 관해서 수많은 해석을 내 놓을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는 겁니다. 력구에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절대로 무슨 이야기를 하던지간에 결국에는 받아들이게 하는 힘 역시 가지고 있다는 것이기도 한 겁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는 수많은 것들이 한 번에 다 보여지고 있습니다. 결국에는 많은 반복 관람을 한 사람들에게는 어떤 부분들이 자신에게 다가온다고 느끼게 되기도 합니다.

샤이닝이라는 작품이 공포영화라는 특성 이외에 무엇을 더 함유하고 있을 것인가에 관해서 직접적인 탐구를 진행하는 사람들로서 영화가 진행이 되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의 경우, 샤이닝의 재미에서, 그리고 자신이 봤었던 공포영화가 샤이닝이 의외의 차이를 보이는 점에 관해서 파고들기 시작한 사람들이기도 한 것이죠. 이 사람들은 결국에느 자신이 느끼게 된 점에 관해서 나름대로의 해석을 내리고, 자신만의 답안을 가지기 시작합니다.

이 답안이 무엇이 될 것인가 하는 점은 사실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영화의 텍스트를 이해하는 것에 관해서 결국에는 어떤 방식을 가지게 되는 것이기도 하거니와, 이 지점에 관해서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것이 결국에는 영화의 특성이기 때문입니다. 샤이닝 같이 텍스트로 겹겹이 싸여 있는 영화 의 경우는 이 상황이 더 많이 나타나게 되기도 합니다. 그만큼 샤이닝은 해석의 여지가 많은 작품이라는 말을 할 수도 있는 것이기도 하고 말입니다.

이 지점이 재미있는 것은, 감독인 큐브릭이 느낀 강박에 관해서 영화를 본 관객들도 이 지점을 느낀다는 겁니다. 결코 간단한 것이 아니기는 하지만, 관객들에게 이 지점을 거의 그대로 던져주고 있다는 점에서 이 영화의 가장 묘한 매력이 발휘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영화가 그 에너지를 표현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죠. 게다가 이 문제는 이 영화를 이해를 하는 데에 있어서 꽤 유용하게 접근이 되기도 하는 답안들이기도 하고 말입니다.

그 답안에 관해서 전 틀렸다, 맞았다 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닙니다. 이는 사회현상이자,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이 봤던 것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고, 나름대로의 답안을 쓰게 만드는 것이니 말입니다. 게다가 이 답안을 받아들이라고 보고 있는 사람들에게 강요를 하고 있는 상황도 아니고 말입니다. 사실 강요를 하기 시작했다면, 그만큼 버거운 것도 없는 것이 자기만의 해석인지라, 이 지점은 결국에는 칭찬을 할 수 밖에 업슨 상황입니다.

이 문제는 묘한 지점으로 흘러가기도 합니다. 사실 이 영화에서 뭔가 매력적인 부분이 있다고 길게 이야기를 하는 것은 오히려 웃기는 일입니다. 샤이닝을 분석는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작품인데, 이 속에서 극적인 재미를 찾는 것은 오히려 웃기는 상황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죠.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받아들이라고 강요하지도 않는다는 점에서 아무래도 정보 전달형에 더 가까운 상황이라고 할 수 있기도 하고 말입니다.

오직 지금의
지점에서만 보자면, 이 작품은 분명히 나름대로의 매력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자신있게 말 할 수 있습니다. 작품이 어디로 흘러가건간에, 결국에는 스스로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에 관해서 대단히 잘 보여주고 있는 데다, 그 만큼의 보상 역시 작품이 해 주고 있는 덕분에 그 면에서 보자면, 이 작품은 아무래도 작품을 하고서도 자신이 어떤 느낌으로서 이 작품을 접근해야 하는지에 관해 이야기를 해야 하는 점에 관해서 좀 더 매력적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것 역시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에너지를 사회 현상과 맞물리게 만들 수 있는 정도라면, 분명히 그 작품은 소임 이상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을 할 수 있을 정도가 됩니다. 이 작품은 그만큼의 에너지를 잘 가지고 있기도 하고 말입니다. 사실 이 문제에 고나해서 더 길게 표현을 하는 것 보다는, 아무래도 이 작품은 나름대로의 해답지를 또 하나 보여준다고 말을 하는 것이 더 어울리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문제에 관해서 대단히 잘 표현 하고 있기도 하고 말입니다.

문제는, 과연 이 해답지가 작용되는 역효과가 무엇일까 하는 점입니다. 사실 전 이 지점이 아무래도 지금 설명하고 있는 자궆에 관해서 가장 불편하게 만드는 부분이라고 생각이 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이 작품은 스스로의 특성에 관해서 어떤 표현을 한다기 보다는, 다른 작품에 고나해서 그 칭송을 하면서, 그 수많은 텍스트들의 향연을 이야기를 하면서 오히려 작품의 가장 본질적인 부분과 멀어지게 할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바로 재미라는 점 말입니다.

재미는 오묘한 구석이 있습니다. 다른 문제 보다도, 영화에서 재미를 표현한다는 것에 있어서 영화가 결국에는 스스로의 스타일을 가지고 있고, 관객들에게 그 에너지를 온전하게 전달 한다는 점에 관해서 얼마나 잘 하는지가 관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이 속에서 텍스트가 많은 작품의 경우에는 그 텍스트에 관련된 부분에 있어서 자신만의 해답을 내 놓는 경우도 상당히 많기도 하고 말입니다. 그리고 그 텍스트의 해답은 자신이 작품을 이해를 하는 방식으로서 만들어 지기도 합니다.

문제는 이 형성 과정입니다. 이는 워쇼스키 형제가 DVD에서 음성해설을 하지 않는 문제와 비슷한데, 영화를 본 사람들은 자신만의 해석이 있을 테지만, 어떤 사람이 이 지점에 관해서 설명을 한다고 하면, 그리고 그가 믿을만한 사람이라고 한다면, 결국에는 그 해석에 관해서 한계를 지닐 수 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이 문제는 결국에는 영화를 보는 사람들의 상상력을 제한 해 버리는 문제로 연결이 되기도 합니다.

사실 이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게 좋다 나쁘다 말 할 수 없기는 합니다. 영화에서 해석의 문제는 여전히 분분하기는 합니다만, 남의 해답을 가지고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드는 것 역시 가능은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몇몇의 경우는 그 반대로, 그 속에서 자신의 생각이 형성이 되고, 더 멀리 가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논술에서 남의 해답지 들춰 보고 거기서 끝나는 상황에 가까운 경우라고 말을 할 수도 있는 상황이 되는 겁니다.

이렇게 되어서 도움이 되면 좋기는 하겠지만, 영화는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 이 문제에 관해서 가장 골치아픈 경우는 엉뚱한 해석을 받아들이고, 그게 좋다고 생각이 되는 경우입니다. 말 그대로 스탠리 큐브릭의 의도보다는 자의식 속에서 어떤 의심의 씨앗에서 자라기 시작한 의도를 영화에서 만들어 감으로 해서 영화를 만들어 가고 있다는 점 말입니다. 이는 대단히 어려운 부분들일 수 밖에 없으며, 결국에는 관객들이 다른 생각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문제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이 문제가 간단치 않은 또 하나의 이유는 사실 의도 자체가 열려 있다는 데에 있습니다
. 해석 자체는 하기 나름이며, 자기 입맛에 맞는 해석을 만들어 내는 것도 영화를 즐기는 한 방법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 지점을 아예 제한을 해 버린다는 데에 있습니다. 영화를 받아들이려고 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자체로서 어떤 차단의 효과를 맛보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는 점에서 아무래도 문제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이죠.

이런 작품의 존재 이유는 간단합니다. 일종의 참고서 보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죠. 그리고 그 속에서 다른 사람들은 또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구나 하는 정도의 재미 역시 느끼는 것도 가능합니다. 다만 제 의견에서는 아무래도 이런 스타일의 이야기는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래도 더 조심스럽게 접근이 되어져야 한다는 겁니다. 물론 아무래도 영화제에서 주로 공개 되는 작품이다 보니, 아무래도 원래 샤이닝 보다는 훨씬 더 접근하기 어렵기는 하겠지만 말입니다. 일단 재미는 있기는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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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피니
횡설수설 영화리뷰2013. 5. 30. 09:52

(참고로 모든 오프닝은 당시에 쓴 겁니다. 유의 부탁 드립니다.)

 

살다 살다 노트북에서 오프닝을 작성중입니다. 넋 빼고 있다가 이제야 생각나서 적고 있는 부분의 폐해라고 할 수 있죠. 덕분에 지금 매우 불편한 의자에서 오프닝을 작성을 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스타일의 글 작성이 그렇게 없는 것은 아니기는 합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그렇게 자주 있는 일도 아니고 말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스타일의 작업이 그렇게 달가운 일도 아니라서 말입니다. 어쨌거나 덕분에 샤이닝 이야기를 하게 되었죠.

그럼 리뷰 시작합니다.



 





스탠리 큐브릭의 작품은 사실 굳이 리뷰를 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 그만큼 스탠리 큐브릭이라는 이름은 영화를 좋아 하는 사람들 뿐만이 아니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상당히 강하게 다가오는 이름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무엇보다도, 작품성 하나에 관해서는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기도 합니다. (물론 재미에 관해서는 이견이 있기는 합니다. 몇몇 영화에 관해서는 제가 보기에도 좀 애매한 구석이 있어서 말이죠.)

스탠리 큐브릭은 일련의 영화 목록만 이야기 하자면, 거장이라는 단어가 아깝지 않을 정도로, 오히려 그가 거장이라는 단어에 아까울 정도로 대단한 목록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워낙에 대단한 영화들을 계속해서 쏟아낸 관계로 아무래도 그가 공포영화라는 굉장히 장르성이 짙은 영화를 만들었다고 했을 때는 당시에는 굉장히 묘한 부분이었을 겁니다. 장르영화의 어떤 특성을 가지고 탈 장르성을 이야기하기에 이렇게 좋은 감독이 없을 정도라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을 정도로 굉장히 다양한 작품을 만들어 낸 감독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샤이닝에 관해서도 어떤 탈 장르성에 관해서 이야기를 할 만한 구석은 굉장히 많습니다. 다른 무엇 보다도,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에너지는 생각 이상으로 굉장히 매력적인 동시에, 그 자체로서 영화에서 무엇을 뽑아 내야 하는지에 관해서 역시 굉장히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영화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런 문제로서 이 영화를 이야기를 하자면, 정말 깊은 이야기를 끝도 없이 할 수 있을 정도로, 이 영화는 장르 텍스트와 탈 장르 텍스트의 백과사전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물론 제가 지금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이 영화의 장르를 어떻게 구분 지을 것인가 하는 점은 아닙니다. 그 많은 분석을 하면서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그 속에서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가 되어서, 그 문제 때문에 이 작품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이야기하고자 함도 아닙니다. 전 역으로 이 작품이 과연 관객에게, 그리고 현대 관객의 관점에서 얼마나 매력적일까 하는 점에서 이 작품을 접근 하고자 합니다. 현대 관객의 입장에서는 많은 영화들이 꽤 흥미로운 관점에서 이야기가 진행이 되어서, 오히려 영화가 별로 재미가 없을 거라는 이야기를 해야 할 상황이 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보기 때문이기도 해서입니다.

전 스플래터 무비는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작품성 어쩌고 하는 문제 보다는, 그냥 이 작품이 제가 받아들이기 힘든 선을 넘나드는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영화에서 무언가를 받아들인다는 이야기를 할 때, 스플레터만큼 제가 넘기기 힘든 장르는 그다지 많지 않은 상황입니다. 사실 개인 취향의 문제이기도 하죠. 그만큼, 전 공포 영호에 관해서 최근의 스타일과는 굉장히 많은 거리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구 썰고 피가 낭자하고, 사람을 거의 정육점에 걸린 고기 수준으로 만드는 영화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하지만, 이런 영화가 최근 공포 영화의 대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 스타일에 관해서 이견을 말 할 수 있는 분들도 꽤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만큼 최근이 공포영화는 호러 영화에서 그 빠르기와 폭력 하나만큼은 정말 인간이 할 수 있는 그 한게를 넘나들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초자연적인 존재가 등장할 시에는 그 한계를 완전히 넘어버리는 사태도 종종 발생하죠. 그리고 그 속에서 느껴지는 속도 역시 대단히 빠르기도 하고 말입니다.

이 속도 문제는 대단히 어려운 부분입니다. 영화에서 어떤 호흡을 짧게 가져가면서도, 그 호흡과는 별개로 이야기는 또 길게 연출을 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도 되고 해서 말입니다. 사실 이 지점에 관해서 이 작품은 좀 어려운 문제를 가지고 가기도 합니다. 보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래도 이 문제가 생각보다 간단하게 다가오면서, 재미를 보장하는 부분이기는 하지만, 솔직히 영화를 만드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오직 스릴만을 위해서 뭔가를 길게 가져가기 힘들다는 이야기 이기도 합니다. (마이클 베이의 화면 하나에 60초를 못 넘어가는 편집이 가장 대표적인 예 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런 편집이 거의 없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롱테이크로, 계속해서 움직이는 장면을 만드는 것으로 해서 영화를 이어가는 것이 미덕이던 시절도 있었죠. 말 그대로 장면 자체의 흐름을 관객에게 그대로 전달을 한 겁니다. 최근에 이 정도의 스타일을 고수하는 감독은 정말 흔치 않으며, 있다고 하더라도, 영화에서 이 스타일을 많이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나마 최근에 워 호스가 이런 스타일을 선보였고, 다크나이트 라이즈 역시 생각 이상의 긴 호흡을 가진 장면들이 꽤 있었습니다.)

물론 장면의 전환이 잘 안되고 흐름이 길다는 이야기와 호흡이 길다는 이야기는 다른 문제이기는 합니다. 이 둘은 상관이 없다고 해야 할 정도의 문제이기도 하죠. 하지만, 샤이닝의 경우는 이 둘을 동시에 다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무엇 보다도, 이 영화는 그 호흡에 관해서도, 그리고 장면의 흐름에 고나해서도 오히려 의식에 가까운 흐름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대단히 길게 되어 있습니다. 이 속에서 긴장감과 혼란, 공포를 일으키고, 궁극적으로는 영화적인 쾌감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겁니다.

이는 결코 쉽게 설명할 만한 성격의 것이 아닙니다. 이야기의 특성상, 스타일이 이쯤 흘러가면, 결국에는 작품에서 어느 순간에는 빠르게 흘러가야 한다는 것을 결국에는 의식을 한다는 이야기가 되었을 경우에 과연 그 긴 호흡을 가지고도 긴박감을 자아낼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이 영화의 문제라고 할 수 있는 겁니다. 바로 그 지점으로 인해서 영화가 좋다 나쁘다가 갈리는 상황이기도 하고 말입다, 더군다나 샤이닝은 공포 영화라는 장르 영화의 범주에 가장 가까운 영화이기도 하니 말입니다.

다행히 이 영화는 그 흐름에 관해서 굉장히 잘 해결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바르기의 지점에서 일부러 호흡의 변화를 주는 것이 아니라, 영화 내내 관객들에게 어던 불안감에 관해서 차곡차곡 쌓아 줌으로 해서 작품에서 그 에너지를 만들어 가고 있는 겁니다. 이 쌓이는 부분은 그렇게 간단한 것은 아닙니다만, 이 작품에서는 그 쌓여가는 에너지에 관해서 관객들이 계속해서 간직하고 가게 만드는 힘 역시 잘 가지고 있습니다. 덕분에 이 영화는 그 문제에 관해서 대단히 매력적으로 보이게 되는 면들 역시 있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영화는 그 속에서 클라이맥스를 향해 천천히 나아갑니다. 쌓여 있던 에너지를 가지고 흘러가면서, 결국에 한 순간에는 폭탄처럼 터질 것을 각오를 하고 말입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바로 이 지점입니다. 어느 순간에는 터져서 관객에게 그 에너지를 몽땅 쏟아 놓을 것이라는 점에서 말입니다. 이 작품의 마지막 장면과 그 에너지는 이 부분들을 대단히 잘 만들어 가기도 합니다. 그리고 관객에게 쾌감을 잘 안겨주죠.

이 마지막은 그래서 대단히 유명하기도 합니다. 관객들을 억눌린 에너지가 이 영화에서 마지막에 해방이 되는 것을 대단히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그 에너지가 결말을 장식하는 것 까지도 대단히 잘 받아들이게 되는 겁니다. 재미있는 점은, 불안한 이 에너지가 구성이 되는 지점에 있어서도 대단히 작품이 잘 구성이 되어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관객에게 이 에너지가 쌓여가는 틈 에서도 재미를 느끼게 해 주는 것이죠.

물론 아무래도 최근의 스타일과는 다르게 이 에너지가 쌓여가는 진폭이 굉장히 넓습니다. 영화 자체가 굉장히 느긋하게 그 에너지를 쌓아 가고 있죠. 그렇다고 해서 이 에너지만 영화가 줄창 쌓아가는 것은 아닌게, 영화에서 관객에게 그 에너지를 쌓아가는 이유를 열심히 설명을 하고 있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관객들은 이 지점에 관해서 정서적으로 설득이 되고, 그리고 그 속에서 이 모든 연결점들을 받아들이게 되는 상황이 되는 겁니다. 덕분에 느린 호흡을 가지고도 영화가 에너지적인 면을 더 많이 가지고 가고 있다고 말을 할 수 있는 상황이 되기도 하는 것이기도 하고 말입니다.

재미있는 점은, 이 지점에 관해서 공포영화의 관습적인 특성에 관해서는 거의 이용을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공포영화의 명가라고 불리우는 헤머필름의 영화들이 이런 문제를 잘 드러내고 있죠. (우먼 인 블랙 역시 이런 지점에서 해석이 가능합니다.) 요즘의 공포 영화보다는 심리 공포 영화의 범주에 억지로 집어 넣을 수 있기는 하지만, 그 심리적인 공포를 발휘하는 것에 관해서 장르의 관습을 거의 사용을 하지 않는 것이 바로 샤이닝의 특성이기도 한 것이죠.

이 영화에서는 미지의 공포에 관해서 이야기를 할 때, 그 미지의 것들을 보여주려고 노력하지 않습니다. 뒤만 돌면 있어 라는 말 보다는, 그저 환상과 그 속에서 지배당하는 인간의 심리로 영화를 구성해서 그 에너지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죠. 영화에서 어떤 매력에 관해서 이야기를 할 때, 이 영화는 그 문제를 대단히 잘 표현을 하는 힘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가 또 다른 공포 영화의 관습을 만들었다고는 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엄밀히 말 하면, 이 영화는 일종의 변칙플레이라고 할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아무래도 이렇다 보니 영화에서는 캐릭터들이 굉장히 중요할 수 밖에 없습니다. 캐릭터들이 움직이는 지점에 관해서 관객들이 지켜보고 있고, 캐릭터들이 느끼는 것을 관객들이 느끼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니 말입니다. 이는 캐릭터에 동화되는 지점에서도 그렇고, 캐릭터에게서 어떤 감정적인 거부를 느낄 때에도 대단히 중요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에너지의 대부분은 이런 캐릭터들의 대사와 연기에서 느껴지는 것이죠.

이 속에는 캐릭터가 보는 것에 관해서 관객들도 그 것을 보고, 그리고 그 것을 이해를 하는 데에서 연결이 되기도 합니다. 결국에는 이 모든 것들로 해서 관객들이 영화적인 에너지를 너무나도 완벽하게 느끼게 되는 것이 이 영화의 매력이 될 테니 말입니다. 그리고 이 영화는 바로 그 지점을 대단히 훌륭하게 해 냈습니다. 그리고 심리극적인 요소와 시각적인 요소 역시 모두 같이 결합이 되어서 관객에게 최대의 효과를 내 주고 있기도 합니다.

이 영화의 시각적인 요소는, 강박이라고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대단히 많은 것들이 의도적으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 형태, 질감 모두가 이 모든 것을 연결을 하는 상황이죠. 시각적으로 보여지는 것에 관해서는 무엇을 설명하건간에 스포일러가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기는 합니다만,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시각적인 부분은, 영화에서 보여줘야 하는 부분들에 관해서 거의 강박이라고 해야 하는 재미를 발생 시킨다고 할 정도로 대단히 치밀하게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이쯤에서 배우 이야기를 꺼내자면, 잭 니콜슨은 이 영화에서 존재 자체만으로도 충격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안면의 에너지가 이 정도로 결합이 되엇,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 정도로 압박을 느끼게 하는 연기로 연결을 해 버릴 정도라고 한다면, 이 영화는 그 문제에 관해서 말 그대로 배우가 완벽한 성공을 거두고 있다고 해야 할 정도이니 말입니다. 이 문제는 아무래도 많은 분들이 이견이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셜리 듀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솔직히 영화에서 배우적인 느낌이 굉장히 묘하게 다가오는 배우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순전히 외모 때문에 말입니다. 하지만, 그 외모적인 부분과 이야기의 스타일이 한 번에 잘 버무려져서 만들어진 이야기의 힘은 그 누구라도 잊기 힘들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대단히 자연스럽고, 대단히 매력적이며, 극적인 부분까지도 매우 자연스럽게 등장을 시키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덕분에 영화 보는 재미 역시 대단하고 말입니다.

좀 재미있는건 대니 로이드의 연기입니다. 아역의 연기가 최근에는 너무나도 많이 발달해 있는 통에,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연기는 오히려 뭔가 부족하다 싶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 화면 자체가 끌어내는 불안과 분노를 표현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절대로 이견이 없을 정도의 연기입니다. 말 그대로 어떤 촉발을 직접 하는 것 보다는 그 기반에 서서, 무엇이 될 수 알 수 없다는 스타일의 연기에 가까운 것이죠. 물론 이는 영화적인 구성의 승리이기도 합니다.

스캣맨 크로더스 역시 이런 지점에 관해서 굉장히 잘 표현을 합니다. 사실 이 영화에서 불안감을 주는 마스크가 한둘이 아니기는 합니다만, 이 영화에서 그가 보여주는 마스크는 이 불안감에 관해서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의 스타일과, 그리고 그 겉면에 관해서는 그래도 쾌활하고, 어떤 문제와, 그리고 그 것을 이겨내는 에너지 역시 잘 전달하고 있다는 점에 관해서는 역시 대단하다 라는 말을 할 수 밖에 없는 수준입니다.

길게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이 영화는 이미 명작에 반열에 올라선 영화입니다. 수많은 해석이 존재하고, 그 해석에 관해서 새 영화가 만들어질 정도가 되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그냥 영화를 어디서 구매를 하셔서, 마음 딱 잡고 한 번 보게 되면, 최근의 영화와는 전혀 다른 스타일이기는 하지만, 묘한 마력을 지니고 있는 이 영화를 한 번은 봐야 한다는 말로 대신 하겠습니다. 그만큼 이 영화는 그 막강한 에너지를 자랑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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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