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백 - 스파이 스릴러와 치정물의 성공적인 조우
솔직히, 스티븐 소더버그가 은퇴 이야기를 했었던 걸 전혀 안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은 결국 지금까지 내려오게 되었고, 이렇게 또 다른 영화가 나오게 되었죠.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 관해서 참 묘하게 생각되는 지점들이 몇 가지 있긴 한데, 그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리뷰 할 때 풀어놓으려고 합니다. 그만큼 이번 영화에 관해서 기대하는 지점들이 몇 가지 있는 상황이기도 해서 말이죠.
그럼 리뷰 시작합니다.
개인적으로 스티븐 소더버그의 영화를 꽤 좋아하는 편입니다. 기복이 좀 심한 감독이긴 합니다만, 그래도 당장에 오션스 11 리메이크 시리즈를 만들었다는 점만 해도 이미 즐겁게 영화를 즐기는 데에 있어서 가장 좋은 감독중 하나라는걸 부정할 수 없게 했죠. 물론 오션스 12와 오션스 13은 오션스 11 만큼의 재미가 있지는 않았습니다만, 영화 아이디어만큼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게끔 하는 데에 성공을 거뒀습니다. 게다가 이후에 로건 럭키를 만들면서, 여전히 하이스트물에 강한 감독이라는 느낌을 주기도 했고 말입니다.
작품성 위주의 영화도 꽤나 잘 하는 감독이기도 합니다. 인포먼트 같은 영화나 트래픽 이라는 영활르 보고 있으면 상당한 감독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죠. 물론 정말 강렬한 영화는 따로 있긴 합니다. 바로 컨테이전 입니다. 이 영화는 솔직히 개봉 당시 흥행이 잘 된 영화는 아니긴 했습니다만, 질병의 발병과 확산에 관해서 정말 무시무시하게 냉정하게 보여주는 영화였었습니다. 이 영화의 가치가 당시에 정말 대단했지만, 그냥 지나가는 분위기였죠. 하지만 사람들이 잊을 수 없는 영화가 되었습니다. 코로나 시기에 벌어지는 일들을 거의 정확하게 예측하는 영화였거든요.
다만, 감독으로서 애매한 영화가 없는 것도 아닙니다. 문제는 그 장르가 액션 스릴러라는 것이죠. 특히나 헤이와이어를 보고 있노라면, 이 영화가 왜 이러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액션이 너무 밋밋하다는게 정말 큰 문제였죠. 하지만, 제게 더 애매하게 다가온건, 이 양반의 은퇴 선언이었습니다. 몇 편 더 찍고 만다는 식의 이야기를 했었던 것이죠. 하지만, 결국 정말 여러 영화들을 더 하는 상황이 되었고, 이후에도 괜찮은 영화들이 여럿 나오기도 했습니다.
이번 영화에는 배우진도 만만하지 않습니다. 당장에 메인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게, 케이트 블란쳇이죠. 연기에 관해서는 더 이상 뭐라 할 수 없는 배우입니다. 영 싸가지 없는 인물부터 시작해서, 어딘가 정신 없는 인물, 그리고 고풍스러운 면까지 모두 소화 하는 데에 정말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배우이니 말입니다. 이 모든 것들이 2020년에서 2025년 안에 다 들어가 있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이 배우의 강렬함을 이야기 할 수 있기도 합니다.
마이클 패스벤더도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매그니토의 젊은 시절로 더 많이 기억하는 배우라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 꽤 괜찮게 소화 해내는 모습을 보여줬으니 말입니다. 다만, 제가 기억하는 영화는 역시나 프로메테우스 입니다. 당시에 데이빗 이라는 캐릭터를 연기 하면서, 단순히 외계인만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제대로 각인시켜주는 배우가 되었죠. 이후에 더 킬러 라는 영화에서는 아예 직업 킬러의 여러 면들을 제대로 소화 해내기도 했습니다.
나오미 해리스 역시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007 시리즈에서 새로운 머니페니 역할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정말 많이 알려진 상황입니다. 꽤 괜찮은 연기를 선보이는 데에 성공하기도 했죠.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에서는 티아 달마 역할도 맡아 꽤 재미있는 연기를 선보인 바 있기도 합니다. 액션 연기에만 국한된 배우도 아니라서, 트레이터 라는 영화나 사우스포, 나는 사랑과 시간과 죽음을 보았다 같은 영화에서도 상당한 연기를 보여주는 데에 성공하기도 했습니다.
이 외에 눈에 띄는 배우는 피어스 브로스넌과 레게 장 페이지 입니다. 피어스 브로스넌은 최근에 블랙 아담에서 닥터 페이트 역할을 하면서, 의외로 연기면에서 상당히 탄탄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죠. 다만, 워낙에 제임스 본드 역할로 기억이 많이 되는 배우이긴 합니다. 레게 장 페이지는 브리저튼 시리즈에서 많은 분들이 기억하게 되긴 했습니다만, 저의 경우에는 최근에 나온 던전 앤 드래곤 : 도적들의 명예에서의 모습이 더 강하게 기억되긴 합니다.
이번 영화는 스파이 부부를 둘러싼 의혹에 대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진행 됩니다. 조지와 캐슬린은 각각 고도의 심리전에 능한 면과, 직관에 가까운 정보분석 능력으로 정보부 내의 신망을 얻고 있는 상황이죠. 어느 날, 정보국의 기밀 정보가 내부 배신자에 의해 유출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조지는 사건에 얽힌 요원 다섯을 의심하게 됩니다. 문제는, 정보를 모으면 모을 수록 캐슬린에게 의심이 쏠리게 된다는 것이었죠. 영화는 이 상황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스파이 스릴러물에도 여러가지 형태가 있습니다만, 많은 배우가 필요하고, 흔히 말 하는 내부자 관련 이야기가 나오는 경우에는 캐릭터 구성과 영화 이야기의 다층성이 굉장히 중요하게 다뤄지는 경우가 많은 편입니다. 두 가지 모두 영화의 기본적인 구성에 있어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긴 합니다만, 흔히 말 하는 배우들의 앙상블이 중요한 영화에서는 더더욱 중요하게 이야기 할 수 밖에 없는 부분입니다. 그만큼 이야기 구성에 있어서 캐릭터과 캐릭터가 만들어가는 이야기가 모두 중요해지기 때문입니다. 러닝타임이 짧으면 더더욱 그렇죠.
영화는 쉽게 말 해 내가 아는 인물이 내부 첩자라는 의심이 들 때 벌어지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만, 이번 영화는 이를 기반으로 해서 이야기를 확장하는 방식으로 갔습니다. 상대가 나와 사랑까지 속인 첩자인가 하는 질문과 함께, 그 외의 인물들도 무슨 문제를 가지고 있는가, 그리고 이 속에서 또 다른 문제는 없었는가 하는 이야기까지 확장하는 식인 것이죠. 영화는 이 확장에서 굉장히 독특한 선택을 하나 했습니다.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긴 한데, 거의 치정극에 가까운 사랑 이야기를 끌어내기 시작한 겁니다.
영화는 시작하고 나서 이내 주인공이 조사하는 사람들간의 인간 관게에 관해서 슬슬 들여다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 인간관계에서 무엇이 의심스러운지에 관해서 역시 굉장히 빨리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각각의 인간관계가 드러나기 시작하면, 이내 그 밑바닥에 들어 있는 심리적인 지점들까지 금방 도달하게 됩니다. 이 속에서 사랑이라는 관계가 갑자기 부각 되면서, 단순히 그냥 의심스러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 하게 됩니다. 그리고 점점 더 인간적인 면들에 관해서, 그리고 자신들의 삶에 관해서 좀 더 깊게 도달하는 방식으로 가고 있는 겁니다.
특정 장르물에서 사랑의 얽히고 섥힘이라는 것을 다루는 경우가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그냥 기본이 로맨스물인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죠. 애초에 그렇게 하자고 이야기 하는 영화이니 말입니다. 아니면 흔히 말 하는 막장 드라마이기도 합니다. 이 역시 애초에 그렇게 하려고 만든 이야기이니 말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이 독특한 지점을 이용하면서, 영화에서 심리적인 지점의 기반에 상당히 빨리 도달하는 면들을 보입니다. 특히나 서로 의심하는 관계라는 것에 관해서 관객들이 단순히 스파이 스릴러로서의 면모만 느끼는 것 이상의 지점들을 만들어내는 것이죠.
다만, 스파이 영화에서 로맨스가 비중을 차지하고, 이것이 의심이 된다는 이야기는 상당히 복합적인 문제를 낳게 될 수도 있습니다. 굉장히 많은 스파이 스릴러들이 심리적인 관계에서 왜 배신이 있는가에 관해 다루긴 합니다만, 그게 국가에 대한 개인의 배신이라는 식으로 다루지, 개인의 애정에 대한 다른 개인의 배신이라는 식으로 가는 경우는 상당히 드물기 때문입니다. 이를 직접적으로 다루면서 상당히 낭만적으로 다가가는 얼라이드 같은 영화도 있었습니다만, 이는 시대적인 특성을 이용하는 면들이 좀 있었죠. 드문 이유는 상당히 간단한데, 결국에는 서로 양립하는 이야기이거나, 아니면 너무 작위적이 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때문에 배신했다고 하는 이야기는 너무 오래전 영화들에서 만든 것들이니 말입니다.
다만, 이 영화는 그 애정의 관계가 국가에 대한 배신으로 작용하는 식은 아닙니다. 이 영화의 가장 독특한 점이기도 한데, 정보부 내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가에 관해서 이야기를 다루는 지점에 가깝기 때문입니다.폐쇄된 사회 내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말 못할 일을 그나마 공유하는 사람들의 집단이 있는 상황에서, 그 내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에 관한 지점을 다룬 쪽에 가까운 겁니다. 그리고 영화는 이를 통해 사랑의 낭만을 찾기 보다는, 개인간의 인간사를 좀 더 깊게 파고들어 이를 해부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번 영화에서 관계의 해부에 관한 가장 독특한 지점은, 이에 관한 사람들의 비정함과 감정적인 면의 교차 입니다. 영화는 감정적인 면이 격동하는 가운데, 이를 사정 없이 파헤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죠. 이를 길게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테이블 위의 자료처럼 들어가고 있는 겁니다. 덕분에 영화는 관객들이 매우 빨리 접근하는 동시에, 스릴러물로서의 냉혹함을 동시에 즐기게 만들어주는 모습을 가져가게 됩니다. 생소하긴 하지만, 그만큼 강렬하고 함축적인 면들을 드러내는것이죠. 그리고 이를 영화의 이야기와 캐릭터에 녹여내는 데에 성공했고 말입니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캐릭터들은 각자 정보부 요원으로서의 능력이 출중한 사람들로서 그려집니다. 각각의 능력은 다르긴 하지만, 정보부로서는 이들이 하는 일이 잘 되어야 정말 좋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도 합니다. 캐릭터들 역시 이를 잘 파악하고 있죠. 동시에 영화에서 인간관계에 관한 지점 역시 다루고 있기도 합니다. 각자가 마음에 두고 있었다가 멀어진 사람들, 하지만 이 사람들이 의외로 가까운 사람일 때에 나오는 반응들을 보여주는 것이죠. 여러 캐릭터가 나오는 이유는 이를 다양하게 표현하고, 영화에서 여러 심정적인 지점을 세분화 하여 보여주는 데에 있습니다.
이 영화의 또 다른 장점은 캐릭터의 특성을 짧은 시간 내에 확실하게 드러내는 데에도 있습니다. 앞서 말 한 인간관계에 대한 지점과 각각의 능력에 대한 지점을 모두 이야기 하면서, 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각자의 방향성을 영화에서 이야기 하고 있죠. 각각 지금 하는 이야기와 벌어진 일들에 대한 대응 방식을 세분화하여 보여줌으로 해서 영화의 재미를 확장하는 데에 성공한 겁니다. 게다가 이 상황에서 각자의 캐릭터 특성으로 인한 새로운 충돌 역시 영화에서 상당한 에너지를 불러일으키는 데에 성공했고 말입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이야기가 아주 두터워졌다는 것은 아닙니다. 영화에서는 사람들에 관한 조사가 상당히 빨리 진행 되고 있고, 각자 드러내는 바도 상당히 금방 보여주고 있기도 합니다. 이 속에서 의심의 강도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는 바, 결국에는 이는 감정적인 부담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그리고 여기에 너무 많은 단서들이 붙게 되면 영화 자체가 과부하가 걸릴 수 있기 때문에 일부러 억제 했다고 할 수 있는 것이죠. 사실, 감정적인 지점을 따라가게끔 만든 이유 역시 스토리 속 정보 과부하를 방지 하기 위한 일이기도 합니다.
영화는 이 모든 과정이 상당히 잘 정리 된 편입니다. 관객들이 스토리를 흡수하는 과정에서 특별히 문제가 될 지점이 없게끔 하게 만들어주고 있는 것이죠. 다만, 이 모든 것들의 결론은 상당히 묘하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결국 결론에 대한 이야기인데, 감정적으로 확실하게 모든 것을 날려버린다는 느낌을 주는 것으로 다가가지 않습니다. 의심의 여파는 남아있는 상태에서, 어딘가 미묘한 지점들이 묘하게 꺼림찍하게 다가오는 엔딩이라고 할 수 있죠. 영화가 제대로 마무리 되지 않았다기 보다는, 일부러 해당 결말을 유도했다는 느낌에 더 가깝기는 합니다.
이런 모든 과정이 한 흐름 내에 묶여 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라고 할 수 있긴 합니다. 상당히 감정적인 지점이 많기 때문에 롤러코스터처럼 움직이는 지점들이 간간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심지어는 각자의 이야기가 일정한 에피소드 단위를 이루는 경우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한 스토리 안에 모두 억제하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게다가 짧은 러닝타임을 충분히 이용하면서, 이를 최대한 간결한 흐름으로 연결해냈고 말입니다. 덕분에 기승전결 역시 꽤나 확실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도 합니다.
영상 측면에서도 정말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영화에서는 기본적으로 매우 차가운 느낌의 영상을 주로 사용하면서, 화면 구성 측면에서 정말 모든 삶이 해부된다는 느낌을 주기 위한 디자인이 정말 많이 사용된 편입니다. 물론 아무래도 주로 대화와 행동 측면을 강조하기 때문에 역동적인 느낌은 없는 편이긴 합니다만, 그래도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이미지를 확장하는 데에는 확실하게 성공했죠. 여기에 음악은 감정적인 지점이 상당히 고조되는 느낌을 만드는 데에 성공했고 말입니다.
배우들의 연기는 정말 좋습니다. 사실 케이트 블란쳇이나 마이클 패스벤더, 나오미 해리스, 레게장 페이지, 피어스 브로스넌 모두가 비슷한 영화를 겪어 본 상황이기도 하고, 감정적인 지점에 있어서 본인이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역시 이미 연구를 진행하는 경험을 한 배우들이기도 합니다. 다만, 이번에는 주로 이런 지점들을 어떻게 짧고 간결하게 전달하는가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쪽이라고 할 수 있는데, 지금 소개한 모든 배우 외에도, 영화에 나오는 배우들이 모두 해당 지점을 확실하게 잡아내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꽤나 묘한 영화입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먹히기 힘든 구성과 결말이긴 합니다만, 영화 자체가 가져가는 이미지나 전반적인 느낌은 꽤나 매력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짧은 시간 내에 속도과 깊이를 모두 잡아내면서도, 군더더기 없이 밀어붙이는 데에 성공하기도 했고 말입니다. 아주 신나는, 내지는 말초적으로 치고 지나가는 영화를 찾으시는 분들에게는 상당히 힘든 영화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렇지 않고 속도감이 있으면서도 그 속에 담긴 여러 지점들을 같이 보고자 하는 분들에게는 꽤나 흥미로운 영화가 될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